[사법개혁]‘고시 지상주의’ 철폐…다양한 경력 법률가 양성

  • 입력 2004년 6월 21일 19시 02분


《사법제도 개혁 작업을 위해 2003년 10월 말 대법원 산하기구로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위원장 조준희 변호사·이하 사개위)가 21일 배심제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문제 등 지금까지 논의돼 온 내용을 발표했다. 사개위가 논의 중인 안건들은 모두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개위 논의 상황을 사안별로 점검한다. 》

▼로스쿨 졸업생에 응시자격…설립인가 기준 등이 문제▼

▽법조인 양성 및 선발 제도 개선=현행 사법시험 제도가 대학을 ‘고시학원화’하고 수많은 ‘고시 낭인(浪人)’을 만들어내 국가 인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사개위 내부에서는 미국식 로스쿨이 유력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제도는 △학부과정에서 법학과를 없애는 대신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 전문대학원에서 3년간 실무 위주의 법학 교육을 실시하고 △로스쿨 졸업자에게 일정한 시험을 치르게 해 법조인 자격을 주는 것. 이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을 법조인으로 양성해 법조 인력의 다양화를 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행정부와 사법부, 대학교육과 법조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법과대가 대부분 로스쿨로 전환하려 할 가능성이 큰데 어떤 기준으로 인가를 내줄지도 큰 문제다. 유럽식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가 미국식 제도인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로스쿨 도입과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1995년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에도 로스쿨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정부 내 이견과 대법원 변협 등의 반대에 부닥쳐 사법시험 합격자 수만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로스쿨 제도 외에 기존의 4년제 법학부 위에 2년제 법률대학원을 설치하는 안(일명 ‘4+2’안)과 기존 제도를 유지하되 사시 합격 인원수를 더 늘이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시민참여 배심-참심제 검토…전문성 부족 오판걱정도▼

▽국민의 사법 참여=배심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통상 12명)이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법관은 형량만을 결정하는 제도. 미국에서 가장 잘 발달돼 있다.

배심제가 도입되면 변호인이 배심원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재판 승패의 관건이 되는 만큼 변호사의 출신 배경이나 재판관과의 인맥보다 변론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배심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또 배심원들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작용해 유무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위험이 크다. 예를 들어 전처 살해 혐의로 기소된 유명 미식축구선수 O J 심슨이 강력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 무죄평결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배심제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참심제는 각 분야 전문가들로 이뤄진 2, 3명의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해 피고인의 유무죄와 양형문제까지 판단하는 독일식 제도다.

참심원들이 법관과 함께 재판을 하도록 해 법관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감시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국민에게 재판 및 심의 과정이 공개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법률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참심원이 단순히 재판에 참석하는 것에 머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배심제 등이 도입되면 시민이 법관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돼 현행 재판 절차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피고인 피의자의 인권 수준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그러나 “성숙된 법률 토론문화가 조성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법조계의 비판론도 많다.


▼기존 변호사-검사중에서 선발…처우개선등 선결돼야▼

▽법조 일원화=일정 기간 변호사나 검사로 활동한 경력자를 법관에 임용하는 것.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 법관을 임명하는 ‘경력법관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현재 논의 중인 내용은 “법조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와 검사 중에서 임용하는 법관 수를 해마다 늘려나가 2012년경에는 신규 임용법관의 50%를 이들 중에서 선발하자”는 것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신규법관 전체를 변호사와 검사 중에서 선발하는 전면적 법조 일원화다.

사개위는 제도 도입 자체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행 법관 인사시스템의 전면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고 법조인 풀(pool)이 완숙된 단계에서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법관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능력 있고 우수한 변호사의 법관 임용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법관 1명 한해 1500건 처리…高法 상고부 설치검토▼

▽대법원 조직 및 상고제도 개선방안=현행 3심 재판구조에서 대법원은 최종심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연간 1만8000여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나 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대법관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12명에 불과하다. 대법관 1명이 한 해 대략 1500건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셈.

사개위는 대법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4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첫째, 상고제한 제도 도입 방안인데, 소송가액 또는 중요성 등을 기준으로 일정 사건에 대해 상고를 금지하거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고법에 상고부를 두어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건의 상고사건을 처리하도록 하며, 대법원은 중요 사건과 고법 상고사건 중 예외적으로 이뤄지는 특별상고 사건 등을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 제도가 채택되면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중 60% 이상이 고법 상고부에서 최종심으로 소화될 수 있을 것으로 사개위는 보고 있다.

셋째, 대법원에 대법관 외에 ‘대법원 판사’를 추가로 두는 방안이다. 대법관 수를 늘리지 않는 대신 대법원 판사를 두어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건을 처리하도록 하거나 대법관과 함께 합의부를 구성해 상고사건을 처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법관들은 중요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이른바 ‘정책판단형’ 대법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

넷째,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재판하는 전원합의체를 여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들 4가지 방안 중 대법원은 고법에 상고부를 두는 방안을, 변협은 대법관 수를 늘리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사개위는 또 “대법원이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이나 전문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법관 출신 이외에 다양한 출신 인사로 구성돼야 한다”며 대법관 구성을 다변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경과와 전망▼

사법개혁위원회가 논의 중인 사안들은 법조계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생활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내용이어서 논의가 진행될수록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사법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뤄져 있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사안별로 세부적인 부분에서 입장차가 있을 뿐 큰 틀에서는 이견이 없다는 점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의 사개위는 또 과거 실패로 끝난 사법개혁 추진 주체들과는 분위기나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 1995년 정부 차원에서 조직된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대법원과 합동으로 ‘법조학제위원회’를 구성했을 때나, 1999년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출범해 사법개혁을 추진할 때는 법조계의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리는 것 외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로스쿨 제도만 해도 대법원이 적극적인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논의를 이끌고 있다. 대법원은 배심제 도입에 대해서도 실무 담당자들이 최근 러시아의 배심제도 견학을 다녀오는 등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개위는 2003년 8월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법개혁을 공동추진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두 달 뒤인 10월 28일 공식 출범했다. 활동 시한은 올해 말까지다. 법원과 법무부, 변호사업계 등 ‘법조 3륜’뿐만 아니라 법학계 국회 교육계 경제계 여성계 등 각계각층 전문가 21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각 위원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전체 또는 분과회의를 통해 토론하고 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방안
구분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안법률대학원(4+2) 안현행 사법시험 제도 보완 안
시행국가미국 (일본은 변형된 형태의 로스쿨 도입)독일한국
법학교육―학부의 법학과를 없애고 대신 3년 과정의 로스쿨 설치―기존 4년제 법학부 위에 대학원(2년)설치―전국 법대 총 정원제 운영―학부교육 강화(졸업학점 대폭 증가)
현행 사법시험 개선안―자격시험으로 전환―응시자격을 로스쿨 수료자로 제한―자격시험으로 전환―1차시험을 법학부 졸업시험으로, 2차시험을 법률대학원 졸업시험으로 대체―합격 인원수 증원―응시자격을 법대 졸업생으로 제한
장점―다양한 전공을 거친 법률가 충원―기존 제도의 틀 유지. 보다 충실하게 법률교육을 받은 사람을 법조인으로 선발―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따른 충격을 피할 수 있음
단점―법조인 양성비용 증가―취약한 법대 교육현실과 대학교간 학력 차이 고려할 때 현실성 낮음―법학교육과 법조인 양성과정이 계속 단절되고, 현행 제도의 근본적 문제점 개선 안 됨
각계 의견교육부와 서울대 찬성. 변호사협회는 조건부 찬성 일부 법과대학 및 법학자 주장일부 법과대학 및 법학자 주장

배심제와 참심제 비교

배심제참심제혼합형
채택 국가미국 캐나다 호주 러시아 스페인 홍콩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일본
내용―배심원단이 법관과 별도로 유무죄 판단―법관 1명+배심원 12명(통상)―배심원은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서 사건별로 무작위 선정―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유무죄 및 양형을 모두 판단―법관 1∼3명+참심원 2명―참심원 임기는 4년으로 당사자 신청·정당추천·무작위 선발 등에 따라 선정 ―재판원이 법관과 함께 유무죄와 양형 판단―법관 3명+재판원 6명―무작위로 선발한 재판원단을 구성한 뒤 사건마다 재판원 선정
장점―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고 참여의 의의가 큼―상식에 기한 평결로 일반인이 재판결과 납득 ―법관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감시기능 수행 ―전문지식이 필요한 재판에서 전문가 활용배심제의 장점 살리면서 단점 보완
단점―여론과 선입관 등의 영향으로 잘못된 사실인정을 할 염려가 있음―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됨―사법참여가 명목에 그칠 우려가 있음―적정하고 형평에 맞는 양형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음 자칫하면 배심제와 참심제의 단점이 모두 나타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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