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수사 종결]수사인력 100명 단일사건 최대

  • 입력 2004년 5월 21일 19시 48분


이탈리아의 반부패 수사 ‘마니풀리테(깨끗한 손)’에 비유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대선자금 수사. 2003년 8월 말 ‘SK 비자금’ 사건으로 촉발된 이후 9개월 동안 정치권과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수많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진기록=2003년 11월 초 대선자금 전면 수사를 선포하면서 남기춘(南基春) 중수1과장과 유재만(柳在晩) 중수2과장 등 기존 인력 외에 SK 비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재계의 저승사자’로 명성을 떨친 이인규(李仁圭) 원주지청장이 긴급 투입되는 등 전국 각 검찰청에서 내로라하는 검사 20명과 수사관 80명이 차출됐다. 이 때문에 원주지청은 내내 청장대행 체제로 갔다.

1996년 당시 이종찬 본부장을 포함해 수사검사가 15명이었던 ‘12·12, 5·18 특별수사본부’ 이후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사용된 수사비만 해도 10억원이 넘는다.

▽신조어 양산=100억원대 현금을 트럭째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비아냥거림에 시달려야 했다. 정치인 14명이 잇따라 구속되면서는 ‘갑신옥사(甲申獄事)’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서청원(徐淸源) 의원은 구속되면서 “패장이 가는 길”이라고 했고, 이인제(李仁濟) 의원은 “차라리 암살을 당했다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安熙正)씨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을 ‘향토장학금’이라고 표현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안대희(安大熙) 중수부장은 오리발을 내밀며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는 기업인과 정치인에 대해 “껍데기를 벗길 때까지 수사를 하겠다”면서 굳은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수사팀 애환=수사팀이 상주한 대검 청사 10층과 11층의 불빛이 밤새 꺼지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수사팀은 숙식의 상당 부분을 조사실 내에서 해결했다. ‘옥살이’였던 것. 그래서인지 수사팀의 중추인 남 중수1과장과 이 지청장은 몸무게가 평소보다 10kg 가까이 불어났다. 저녁식사는 워낙 김치찌개만 배달시켜 먹다 보니 수사팀은 김치찌개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돌린다. 안 중수부장은 “수사팀은 감기 걸릴 자유도 없다”며 닦달했지만 수사 막바지에는 본인이 심한 독감과 스트레스성 어깨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수사팀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음고생을 했다.

문효남(文孝男)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대선자금 수사가 한나라당을 겨누면서부터는 오해를 살까봐 그동안 동서지간인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전 원내총무와 전화 한 통화 나누지 못했다. 그는 이인제 의원과 사법시험 동기이기도 하다. 안 중수부장은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가 서울지검 특수부장 재임 때 막내 수사검사였다.

▽전폭적인 국민 지지=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과 안 중수부장의 지휘라인이 정치권과 재계의 이의제기에도 아랑곳없이 수사를 밀어붙이자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상 검찰 팬클럽인 ‘송짱, 안짱’이 생겨났다. 팬클럽 회원들은 수사팀에 보약과 떡을 보내면서 검찰수사를 응원했다. 인터넷에는 이번 수사를 검찰과 한나라당의 대결구도로 묘사한 ‘대선자객’이라는 제목의 패러디 만화가 유행했고, 최근에는 이것이 책으로 출판됐다.

안 중수부장은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모자를 쓰고 외출하기도 했다. 그는 “식구들과 노래방에 갔는데 노래방 주인이 ‘안 검사가 아니냐’면서 공짜로 노래시간을 늘려준 일 등이 있다”면서 “서민들이 권력자의 부정부패 단죄에 대해 속 시원해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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