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엄미선/‘인성교육’이 먼저다

  • 입력 2004년 3월 29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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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풀린 김에 운동 삼아 걷기로 마음먹고 출·퇴근길에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고 다닌다. 출근길 버스에는 유난히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많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한 듯 앉아서 혹은 선 채로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거리며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단어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나 역시 수험생 시절이 있었기에 고단한 그들의 모습이 여간 안쓰러워 보이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 안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도 적지 않은데, 어느 누구 하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버스 앞쪽 출입문부터 양쪽으로 네 번째 자리까지는 ‘경로석’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데도 자리를 차지한 학생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여든은 족히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서 계셨다. 할머니 바로 앞 경로석에 앉은 여학생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에 심취돼 할머니는 안중에 없는 듯했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서기로 했다. 그냥 얘기하면 잘 안 들릴 것 같아 휴대전화 창에 ‘학생, 거기는 경로석이야!’라는 글씨를 찍어서 보여줬다. 그러나 본체만체해서 결국 나만 민망하게 됐다. 앞뒤 좌석도 모두 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내릴 때까지 몇 십분 동안 계속 서서 가야 했던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번영하려면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성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로 자식을 한 명만 낳아 기르는 가정이 늘어가는 세태인데 웃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성교육을 가정이나 학교에서 했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들의 해맑은 얼굴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엄미선 회사원·충남 예산군 오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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