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학 분석 심포지엄 '평준화 격론'

  • 입력 2004년 1월 28일 17시 25분


서울대가 최근 공개한 사회과학연구원의 '입시제도의 변화 :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연구결과를 놓고 28일 열린 심포지엄은 평준화 존폐를 둘러싼 열띤 토론장이 됐다.

연구책임자인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개회사에서 "서울대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하고 향후 연구에서 좋은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는 뜻에서 자료를 공개했다"며 "이념적 도덕적 잣대로 현재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단순히 평준화, 비평준화로 문제를 구분하지 말고 심도 있게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예상대로' 고교 평준화에 대한 찬반 토론이 논의의 핵심을 이뤘다.

서울대의 발표를 놓고 10여년 동안 전반적으로 대졸학부모가 얼마나 늘었는지, 부모들의 아이큐와 아이들의 관계 등 학력에 영향을 미칠 요소들에 대한 원인과 본질에 대한 솔직한 분석이 별로 없어 왔다. 대신 단순히 '부(富)의 세습이 학력 세습으로 이어진다' 또는 '평준화가 학력 세습을 유발했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분석들이 난무해 왔다.

◆연구진 '평준화 폐지' 해석 경계 = 이날 심포지엄에서 공동연구자인 이창용 교수는 "언론에서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소득격차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도하는 데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평준화든 비평준화든 사교육이 새 제도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학력 세습을 막기 어렵다는 게 연구 결과"라며 "장학제도 확충 등 저소득층 배려, 다양한 자립형 고교 허용, 사교육비의 수업료 전환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서이종 사회학과 교수는 "서울-비서울 구분보다는 도시-비도시 구분이 더 중요하다"며 "입시제도 변화 시기에 서울과 강남 8학군의 입학률은 다소 떨어졌지만 곧 회복됐다. 이는 사교육의 높은 적응력과 정책 실패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일 경제학부 교수는 "부모의 학력 프리미엄은 엄연히 존재하며 부모 학력에 따른 입락률 격차는 확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학력 세습과 평준화 논란 =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한 전교조 정재욱 정책실장은 서울대의 연구결과 자료를 패러디해 `과학을 가장한 궤변:누가 가난한 자의 서울대 입학을 가로막는가?'라는 토론 자료를 내놓았다.

정 실장은 토론에서"'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제목으로 한껏 멋을 부린이 '글꺼리'는 '실증분석'과 '해석'이 따로 노는 바람에 몸(사회) 속에 들어와서 복통을 일으키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고서는 특히 서울대 진학률을 공교육의 목표로 착각하며 공교육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평준화가 사회계층을 고착화했다는 결론을 도출하려면 다른 여러 변인들을 통제하고, 소득 변인이 미치는 영향을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을 비교 분석해 상관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실장은 "기득권 세력이 오히려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데 평준화 때문에 학력 세습이 고착되고 있다는 해석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며 "우수 학생만을 차별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논리가 과연 교육적으로 타당한지도 극히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연구 결과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분명한 데이터"라고 평가한 뒤 "그러나 평준화는 학교교육을 획일화하는 과격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획일적이고 질 낮은 교육을 강요하는 평준화는 불평등 심화의 주범"이라며 "고소득층이 대안을 사교육에서 찾는 건 인지상정이고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윤정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해석에 있어 신중함이 필요한 연구결과"라며 "학생의 학과 선호도가 매년 달라지는 데 그런 것은 고려되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논리적 비약이 많은 연구가 아닐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그는 서울대 입시 제도와 관련 "국가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 서울대는 자체연구를 지속해 결과를 축적하고 독자적으로 고교 수준을 평가하자"고 제안한 뒤 "우수한 학생이 역차별 받지 않도록 서울대 입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홍원 한국교육개발원 학교교육연구본부장은 "학력세습은 사회가 안정화되고 소득과 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생겨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본다"며 "평준화의 기본틀은 유지하되 뛰어난 아이들에게는 부적절한 면을 보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일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연구실장은 "실증자료 분석은 매우 의미 있지만 사회대라는 샘플이 전체로 확대해석될 우려가 있다"며 "교육부는 평준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것이며 다만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오락가락 교육정책 비판 = 참석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의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용술씨(66)는 "연구 결과는 실증적인 연구의 첫 사례고 이런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공교육을 살리는 길은 평준화다. 입시제도만 갖고 계속 정책을 만들었는데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교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산에 살고 있는 주부 김모씨(45)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고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렵다는 것을 다들 인정한다"며 "현재로서는 평준화나 비평준화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방안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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