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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9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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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많은 고통을 안겨준 수해현장은 여전히 상처투성이다. 복구예산의 ‘선(先) 지원, 후(後) 정산’은 여전히 요원한 얘기이고 이에 따라 곳곳에서 집단민원이 터져 나오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계속되는 고통=우포늪 대대제방이 무너지면서 농경지 200여ha가 황무지로 변해버린 경남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주민들은 쓰러진 채 썩어버린 볏짚을 걷어내느라 여전히 분주하다. 10여가구 주민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깡통집’이라 불리는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한 달 째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 태풍 매미 피해 최종 집계 | |
| 인명 | 130명(사망 117, 실종 13명) |
| 재산 | 4조7810억원(공공 3조2640억원, 개인 1조5170억원) |
| 이재민 | 4089가구, 1만975명(현재 670가구, 1600명) |
| 침수 | 건물 2만1015동, 농경지 3만7986ha |
| 자료:중앙재해대책본부 | |
바닷가인 경남 고성군 삼산면 포교리 두포마을. 해일이 덮쳐 주택 16채가 일순간 사라진 이 마을 도로변에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일렬로 들어섰다. 주민 김모씨(66)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얼마 전 보급됐으나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불편이 많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 수는 670여가구 1600여명. 이 중 상당수는 올겨울을 컨테이너 하우스나 마을회관 등에서 지내야 할 형편이다. 이재민들은 “겨울이 오기 전 새 집을 장만하고 싶지만 정부 지원금이 나오지 않아 애가 탄다”고 입을 모았다.
태풍으로 형체조차 없이 사라진 수천ha의 남해안 양식장은 복구작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양 쓰레기 2만5000t을 포함해 수해 쓰레기 9만여t이 수거되지 않은 채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부산항 신감만 부두의 크레인 6기도 여전히 드러누워 있다. 원인 규명 문제로 복구는 내년에야 이뤄질 전망이다. 영동선 철도 영주∼강릉노선은 이달 말경에야 복구가 마무리될 예정.
▽‘쥐꼬리’ 지원과 예산 부족=태풍 피해지역은 모두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지원 기준은 여전히 현실과 거리가 멀다.
주택은 피해규모에 관계없이 50m² 이하여야 하고 빈집은 제외된다. 농작물과 어선, 어망 피해 지원도 실제 복구비용에 크게 못 미친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정모씨(58)는 “태풍 피해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대책이나 지원은 10년 전이나 별 달라진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정부는 이재민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선지원 후정산’ 원칙을 밝혔지만 자치단체들은 “담보도 없이 덜컥 돈을 주었다가 나중에 누가 책임을 지느냐”며 집행을 미루고 있다.
국비지원과 별도로 거액의 지방비를 마련해야 하는 자치단체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공공부문과 사유시설을 합쳐 3조663억원의 복구비가 필요한 경남도의 경우 국비지원과 융자 등을 빼고 2813억원의 지방비(도비+시군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확보된 예산은 1561억원에 불과해 부족분을 지원해 달라며 정부에 ‘애걸’하고 있다.
영양군 관계자는 “지난해 태풍 ‘루사’ 때도 30억원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올해도 지방채로 수십억원을 조달해야 할 판”이라며 “어떻게 갚아나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후유증과 집단민원=경남 거제시 주민들은 장기 정전 사태와 관련해 한전을 상대로, 마산시 해운동 수몰참사 유족들은 마산시 등을 상대로 각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집단민원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경남 의령군 농민 100여명은 8일 오후 의령군청 앞에서 궐기대회를 가졌다. 농민들은 “정곡면 월현천 제방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붕괴되면서 200ha의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며 “철저한 원인규명과 향후 대책을 15일까지 내놓지 않으면 납세 거부 등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초전마을 주민 대표 6명은 “경남개발공사가 바다를 매립해 공단을 조성하면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8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창녕=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특별재해지역 무슨 소용있나” 분통▼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본 부산 가덕도와 경남 마산은 지난 한 달간 주민과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렸으나 피해가 워낙 컸던 탓에 태풍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부산 가덕도=9일 오전 10시 부산 강서구 녹산동 선착장에서 20분간 배를 타고 도착한 가덕도. 선착장 앞 바지선에는 수백t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마을 곳곳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피해가 심한 천성동과 눌차동의 경우 해안가를 따라 태풍 때 바닷물이 덮친 집들이 모두 망가진 채 방치돼 있었다.
한 척에 1000만∼1500만원 정도인 소형 선박도 심하게 파손된 채 해변 곳곳에 늘어서 있었지만 어민들은 척당 수백만원 하는 수리비용 때문에 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천성동 주민 800여명은 다른 마을과 연결되는 길이 끊겨 섬 속의 섬처럼 고립돼 힘들게 생활하고 있지만 언제 도로가 복구될지 기약조차 없는 상황이다.
가덕도에는 500여명의 주민들이 이웃집과 친척집에서 한 달째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천성동 통장 박두성씨(45)는 “방파제가 부서져 배를 정박할 곳이 없고 도로까지 끊겨 중장비가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혀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산=태풍 때 해일 등으로 인해 18명이 숨지고 대형건물 35곳이 침수돼 피해가 컸던 곳이다.
9일 오후 침수로 2명이 숨진 마산시 해운동 K복합상가의 지상 1층과 지하층 6개 점포에서는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건물 지하가 침수됐던 신포동의 주상복합건물 H마리나 입주민 250여명은 아직도 복구가 이뤄지지 않아 전기와 식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8명이 수몰한 해운동 H프라자의 경우 외형은 정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하층으로 내려가자 역겨운 냄새가 풍겼고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이 건물 관계자는 “복구가 끝나려면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H프라자 희생자 유족 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과 관련 공무원 처벌 등을 요구했으나 마산시의 대답은 무성의하다”며 “시장 퇴진 운동은 물론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상가의 한 점포주(66)는 “태풍이 지나간 지 언제인데 지원이 한 푼도 없느냐.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돼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마산시는 해안 매립지의 안전대책과 관련해 “개발행위의 규제가 가능한 ‘방재지구’로 지정하고 범람하거나 역류한 바닷물을 모으는 유수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환경단체 등은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책을 졸속으로 마련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마산=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재난체계 얼마나 손질했나▼
수해지역 자치단체들은 피해 집계와 응급 복구에만 매달릴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는 여전히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중앙재해대책본부도 “인명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도 재해대책본부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나 사후관리에는 소극적이다.
이번 태풍에도 예외 없이 제방 200여곳이 무너진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연결하천의 개수(改修)가 시급한데도 이에 대한 얘기는 없다.
읍면동 사무소의 기능 강화도 시급하다. 1998년 읍면동 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하면서 기술직 공무원을 대폭 줄인 것이 효율적인 초기 대응 등 재해 대응력을 떨어뜨렸기 때문.
장인태(張仁太) 경남도 행정부지사는 “중앙단위의 기구 설립도 중요하지만 특히 읍면의 기능을 보강하지 않으면 손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편 경남도는 마산 해안매립지의 안전대책을 세우기 위해 이달 말 해일 피해가 많은 일본의 몇 지역에 10명 규모의 ‘견학단’을 보내기로 했다.
또 침수와 해일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의 건물은 2층부터 주거공간을 배치하도록 지도하고 비닐하우스도 ‘내(耐)재해형’ 설계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재해대책 매뉴얼을 개발하는 한편 기초자치단체에 재난전담상황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 재해대책담당관실 이경재(李敬載) 사무관은 “국립방재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한 유형별 재해대책 매뉴얼과 기초단체 상황실이 완비되면 태풍 해일 호우 지진 등에 훨씬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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