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 스포츠카族 - 스피드狂” 자유로 인근 광란 레이스

  • 입력 2003년 10월 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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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1시경 경기 파주시 자유로 통일동산 부근의 한 왕복 6차로 도로. 다니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에 BMW M3, BMW Z4, 벤츠 CL600 등 고급 외제차와 스포츠카 20여대가 모여들었다. 잠깐의 웅성거림이 진정된 후 M3와 혼다 S2000 두 대가 앞으로 나와 나란히 섰다. 심판을 보는 한 청년이 힘차게 양 손을 내리며 “하나 둘 셋, 출발!”이라고 외쳤다.》

‘부앙’ ‘부르릉∼’.

고막을 찢는 듯한 엔진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를 지켜보던 40여명의 환호성 속에 두 대의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완만한 곡선 도로였지만 누구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잠시 후 두 대의 차는 출발점으로부터 400m 떨어진 ‘결승점’에 도착했다.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3, 14초.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혼다 운전자가 차를 출발점으로 돌리자 ‘갤러리’들이 승자 주위에 모여 “끝내줬다” “출발하는 힘이 엄청나더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정지 상태에서 400m 거리 결승점까지 누가 빨리 도착하는지를 겨루는 ‘드래그 레이스(Drag Race)’, 일명 ‘제로-400 레이스’가 막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 레이스에서 참가차량이 낸 순간 최고속도는 시속 150km, 순간 최대 마력은 300마력에 달했다.

드래그 레이스는 자동차 마니아들이 모여 튜닝(속도를 내도록 차량을 개조하는 것) 차량의 성능을 시험해보는 게임. 수도권에서는 파주시와 경기 성남시 일대에서 거의 매주 이런 경기가 벌어진다. 경기 가평군 중미산 일대에서는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이용해 경주가 벌어지기도 한다.

경주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주로 상류층 가정의 자녀들이지만 공무원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있다. 경주는 대부분 ‘친선 게임’으로 진행되지만 “간혹 돈내기를 하거나 패자가 승자에게 차를 바치는 ‘차 따먹기’ 경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한 참가자의 귀띔.

문제는 이들 경기가 운전자 자신과 남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

자동차 전문가들은 정지 상태에서 갑자기 최대속도를 내는 이 레이스가 운전자를 죽음으로 몰 수도 있는 위험한 경주라고 경고한다. 운전이 조금만 서툴러 핸들 조작에 실수를 할 경우 차가 도로 밖으로 튕겨나갈 수도 있다는 것.

실제 성남시에서는 지난달 9일과 19일 두 차례 사고가 있었다. 19일에는 경주차끼리 충돌해 운전자가 중상을 입었다.

또 경주가 차량통행이 별로 없는 한적한 밤에 이뤄지지만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공공도로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대형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주경찰서의 한 교통경찰관은 “경주가 벌어진다는 첩보가 있을 때마다 단속에 나서지만 그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달아나기 때문에 잠시 해산을 시키는 수준”이라며 “해산된 차량들이 금세 비슷한 장소에 모여 경주를 계속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날 경주에 참가한 회사원 이모씨(28)는 “레이스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자동차 마니아들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파주경찰서 교통지도계의 한 관계자는 “소음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주말마다 단속에 나서고 있다”며 “경찰이 자동차 경주자들을 해산해도 금세 다시 모여 경주를 계속해 골치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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