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마산…주민 "해일 경고 안해" 당국 "방송했다"

  • 입력 2003년 9월 13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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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시 봉암동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양덕동과 중앙동을 거쳐 월영동으로 이어지는 6㎞의 해안도로변은 한마디로 쑥대밭이었다.

수 백 개의 상가와 점포는 태풍 매미가 몰고 온 강풍에 해일까지 덮쳐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대형 건물 1층은 대부분 구멍이 뚫렸고 남아있는 간판이나 철 구조물들은 뒤틀리고 찢겨져 줄 폭격을 맞은 듯 했다.

상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팔을 걷고 복구에 나섰으나 상상조차 하기 힘든 피해에 넋을 놓고 있었다.

마산 시민들은 "주민들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지만 행정당국에서 대피령을 내리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며 "마산지역 경기가 한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마산시 봉암동 마산자유무역지역 부광설비 앞 해안도로.

14t급 근해형망 선주인 전모씨(50)는 "12일 오후 9시경 마산항 적현부두에 정박시켜 두었던 어선이 파도에 휩쓸려 배를 구하기 위해 1시간여 동안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500m를 밀려와 좌초됐다"며 한숨을 지었다.

인근 동남주유소 한광 소장(36)은 "어젯밤 집채 같은 파도가 덮쳐 간판과 지붕 구조물, 주유기 등이 망가져 수천만원대의 피해를 입었다"며 "이 곳에서 10년째 주유소를 하지만 그처럼 사나운 바람과 파도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주변 담벼락도 곳곳이 무너졌고 인근 공장에서 유출된 시커먼 기름이 도로를 뒤덮여 심한 악취가 진동했다. 자유무역지역 후문 앞 산호천 주변에는 소형 보트 10여척이 도로위에 올라와 널브러져 있었다.

역시 해안도로변의 차량오디오 전문점인 오토사운드 대표 한명일씨(30)는 "어젯밤 10시경 점포가 물에 잠기는 것을 보고 발만 동동 구르며 인근 상가로 대피했다"며 "전자제품들이 물에 잠겨 5000만원 이상의 피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마산시 오동동 마산수협 인근 보성수산의 유기철 부장(30)은 "어제밤 10시경 아파트만한 파도가 덮치면서 50t 규모의 배 3척을 달랑 육지로 밀어올렸다"며 "바닷가의 건물과 자동차 등은 모두 황폐화 됐다"고 전했다.

얼마 전 '마산 어시장 축제'를 개최하고 시장 활성화를 다짐했던 남성동 어시장 일대 150여 횟집들은 수족관과 점포 대부분이 형체마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도가 쓸어갔다.

해운동 동성해운 아파트와 서항부두 사이의 간선도로는 서항에 야적해 두었던 길이 7~12m의 원목 수 백 개가 도로 좌우는 물론 상가 입구에 까지 겹겹이 쌓여 태풍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서항부두 내에서 항만계량사를 운영중인 정영란씨(48)는 "모든 정밀기계에 짠물이 들어가 못쓰게 됐다"며 "청소를 해 보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항부두 맞은편 지하 3층, 지상 19층의 주상복합 건물인 경민시티빌에서는 이날 오후 군 특수부대와 소방대원들이 투입돼 지하층의 물빼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주민들이 "어제 밤 지하 노래방과 주차장에 2, 3명이 나오지 못했다"고 주장했기 때문.

특수부대 대원들은 "지하가 어둡고 물이 흐려 시야를 확보할 수 없다"며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건물 9층에 사는 임병연씨(41)는 "부두에 야적해 두었던 원목이 마음대로 떠다니고 비바람이 엄청나 상당수 주민들이 1층 로비로 대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태풍 내습 당시 노래방 등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20여명이 지하 1~3층의 식당과 노래방, 주차장 등에 갇힌 것으로 알려진 마산시 월영동 해운프라자.

해안에서 400여m,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0여m 떨어진 이 곳 상가일대에 해일과 함께 바닷물이 덮쳐 대부분의 지하층은 물이 가득 찼다.

마산소방서 현장 지휘소에는 이날 오후까지 손모씨가 "딸(21)이 해운프라자 지하에 있는 것 같다"고 신고하는 등 22명이 실종신고를 했다. 당초 28명이 실종신고를 했으나 6명은 귀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 3층 지상 6층의 상가건물인 이곳에서는 12일 밤부터 소방대원 50여명과 펌프차 3대, 양수기 10대 등이 동원돼 물 퍼냈지만 오후 4시 현재 3000여t을 빼내는데 그쳤다.

마산소방서 관계자는 "지하 3개 층에 찬 물이 적어도 1만t은 될 것으로 추정돼 퇴수작업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며 "양수기 등 장비가 제때 조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프라자 주변에는 실종자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눈물을 훔치며 "작업이 왜 이리 더디냐"며 울분을 토했다.

경남대 1학년 백모군(20)은 "지하 3층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문모군(20)이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며 현장 지휘소에 실종 신고를 했다. 백군은 "12일 오후 10시경 친구가 '아직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통화를 한 이후 아무 연락이 없다"며 울먹였다.

마산시 월영동에 산다는 박모씨(58·여)는 통영에서 선원 생활을 하는 아들 김모씨(30)가 추석을 쇠러 왔다가 실종됐다며 해운프라자 옆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해운프라자 주변지역 상인들은 "행정당국에서 강제퇴거는커녕 별다른 경고를 하지 않아 이처럼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마산시 재해대책본부와 월영동 사무소 관계자들도 "태풍이 피크에 달했을 무렵인 오후 9시부터 정전이 된데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손을 쓸 수 없었다"며 "특히 바닷물이 해운프라자 등 바다에서 먼 지역까지 올라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마산시의 한 관계자는 "주로 절개지 주변과 저지대를 중심으로 순찰을 하며 주민 신고를 받고 대응했다"며 "상가밀집 지역의 이용객을 상대로 대피령을 내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산시는 "지역 유선방송사와 공중파 방송사에 협조를 요청해 '태풍 매미가 만조시간에 맞춰 내습하므로 해일 피해가 우려되니 저지대와 해안가 주민들은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방송을 여러 차례 내보냈다"고 해명했다.

마산=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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