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특검 수사기록]박지원-김영완 수시로 만났다

  • 입력 2003년 7월 4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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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본보가 입수한 ‘대북 송금 의혹 사건’ 특별검사팀 수사 기록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대북 송금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받았다는 진술도 들어있다. 다음은 요지.

▽박지원-김영완 수시 접촉=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현대의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의혹이 있는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특검팀에 의해 이 돈의 세탁을 맡았던 인물로 지목된 김영완(金榮浣)씨와 수시로 접촉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박 전 장관의 수행비서였던 하모씨의 수첩에는 김씨의 이름이 2000년 6월부터 11월 사이에만 세 차례나 적혀 있다. 하씨의 6월 22일경 메모에는 ‘김영완 회장(내일 오전에 조찬 끝나고 잠깐 뵙자고 합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김씨의 전화번호로 보이는 숫자가 적혀 있다. 7월 22일 메모에도 ‘8월 11일∼13일 체크인, suite1, 일반방 1→김영완 회장’이라는 내용의 호텔 예약 기록이 적혀있다. 11월 21일자 메모에도 ‘김영완 회장’의 이름이 한 차례 더 등장한다.

특검팀 관계자는 “하씨의 메모 가운데 일부만 압수한 것으로 실제 두 사람의 접촉 기록은 더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DJ에게 실정법 위반 보고=임동원(林東源) 전 국가정보원 원장의 수사 기록에 따르면 임 전 원장과 이기호(李起浩)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박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에게 대북 송금을 위한 불법 대출 경위를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대북 송금을 위한 재원을 합법적인 남북경제협력기금에서 마련하지 않고 불법적인 대출금으로 충당하게 된 것의 배경도 나타나 있다.

임 전 원장, 박 전 장관, 이 전 수석은 2000년 5월 31일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현대에 대한 특별지원을 결정했다. 이 전 수석은 이 자리에서 일반대출보다 금리가 싼 남북경제협력기금으로 현대를 지원하자고 제안했지만, 박 전 장관과 임 전 원장은 “그렇게 하면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므로 곤란하다”고 지적해 논쟁을 벌였다. 결국 이들은 산업은행에 대출을 요청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들 3인은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북한에 대한 5억달러 지원 예정을 보고하면서 대북 사업권 취득 대가로 북쪽에 돈을 보내는 것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을 수 없어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대북 송금이 실정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이들 3인이 보고할 때 알게 됐다는 것이다.

▽4000억원 부당대출 및 처리=정몽헌(鄭夢憲)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2000년 6월 1일 김충식(金忠植) 당시 현대상선 사장을 불러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을 것을 지시했다.

같은 달 7일 김 전 사장은 이근영(李瑾榮) 당시 산업은행 총재에게서 “아침에 청와대에서 얘기 들었어. 얼마가 필요해”라는 질문을 받고 ‘상선 운전자금을 얹어 쓸 욕심’으로 현대상선이 북한에 보내기로 한 2억달러에 1700억여원을 더해 “최소한 4000억원은 있어야 겠다”고 요구해 4000억원을 대출받았다.

박상배(朴相培) 전 산은 영업1본부장의 진술에 따르면 현대측이 같은 해 6월 30일 4000억원을 갚지 못하자 이 전 총재는 “현대상선을 부도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금융감독원은 같은 해 7월 13일 산은 보고서를 통해 부당 대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금감원 실무자는 특검에서 “산은의 보고서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폐기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정 회장은 “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1억달러를 대신 송금했다고 해서 현대가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상회담 추진 배경=정 회장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 시작된 것은 99년 12월. 정 회장은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를 통해 북한과 접촉, “북한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으며 이는 곧바로 박 전 장관에게 통보됐다. 이어 이 사실이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으며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2월 초 임 전 원장에게 “북한이 정상회담을 제의해 왔는데, 박 장관을 만나 내용을 알아보고 제의의 신빙성과 가능성 등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임 전 장관은 김보현 당시 국정원 대북전략국장으로부터 “신빙성은 있으나 일단 특사 접촉을 통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2월 중순경 이를 김 전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쪽이 싱가포르에서 예비접촉을 갖자고 한다”며 “박 장관을 특사로 임명하니 그를 보좌할 국정원 전문가를 지원하라”고 임 전 원장에게 지시했다.

남북은 2000년 3월 22일의 3차 협상 때 초청 주체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할 것인지와 김 위원장의 답방(2차 정상회담)을 언제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의견이 맞서는 바람에 다시 만날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되었다.

그러나 다시 현대가 북쪽과 정부를 중개해 같은 해 4월 8일 4차 회담 일정을 잡아 협상이 재개됐고, 결국 4차 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됐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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