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조심하라 일렀건만…" 한총련 수배자 어머니

  • 입력 2003년 5월 21일 15시 37분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펄펄뛰고 야단을 쳤어요. 너희들은 맞는 것에는 익숙할 텐데 그냥 맞고 있지 왜 덤볐느냐.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하는게 학생운동 아니냐. 밟히면 밟히는대로 참아야지, 이 중요한 시기에 어쩌자고…."

3년째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한총련 소속 단국대생 안모씨의 어머니 한순옥씨(51)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나왔다.

"줄곧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라고 신신당부해 왔고, 아이들도 최근에는 계속 평화적으로 활동해 왔어요.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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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한총련 소속 연세대생 박모씨의 어머니 선금옥씨(51)는 끝내 말을 맺지못했다.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식 행사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로 노무현 대통령이 정문 출입을 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누구보다도 이를 안타깝게 여긴 것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부모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한총련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연이어 정부가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하면서 이들이 지금껏 호소해 온 '한총련 합법화' 및 '일괄 수배해제' 문제가 물건너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한씨와 선씨를 포함해 한총련 수배 학생들의 부모 15명은 지난 4월 24일부터 연세대학교 앞에 천막을 치고 한총련 합법화와 일괄 수배해제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왔다. 수년째 경찰의 수배를 받고 학교 밖을 나서지 못하는 자식들을 그저 팔짱만 끼고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

"아이가 학교의 찬 마루바닥에서 이불도 제대로 덮지못하고 자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밥은 제때 먹는지, 혹 어디 아프거나 다치지는 않았나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무엇보다 몇 해째 학교에 갇혀 있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부모들이 나섰던 겁니다."

이들은 밤이면 차가운 천막 바닥에서 신촌 거리를 지나는 차 소리를 들으며 새우잠을 자고, 낮에는 각 부처와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선처를 호소했다. 매일 저녁 7시 반부터는 시민들과 함께 수배 해제를 기원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뒤 최근 한총련 문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릴 기미를 보이면서 이들의 마음도 조심스러운 기대에 부풀었었다.

"최근에는 그래도 좀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뭘 해 먹일까, 뭘 해 줄까 하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한씨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선씨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막막하다"며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워 학생들을 나무라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다그치긴 했지만 학생들이 '일부러' 그런 일을 꾸미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있다.

한씨는 "시위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맞고 떠밀리고 하다 보니 분한 마음에 바닥에 다리를 뻗고 운 적도 많았다"며 "그동안 아이들도 평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정말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얼마전 어머니 고생하시는 거 알고, 우리도 많이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참고 지켜봐달라고 오히려 위로했는데…."

수배 학생들의 부모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학생들도 잘못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적 차원에서 논의해온 수배해제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씨는 "전에는 부모들이 계속 단식을 해서 실려 나갈 정도가 되야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해서 단식을 시작했었다"며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들을 패륜아로 만들지 말아달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바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나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한씨는 "우리 아이는 잠자리가 까다롭다"며 "온 식구가 하얗게 풀을 빳빳이 먹인 이불에서 한 방에서 자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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