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사령실, 방화순간 모니터 화면 놓쳤다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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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당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대구지하철공사 운전사령실에서는 당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공사 3층에 있는 운전사령실에 설치된 대형 상황판에는 대구지하철 30개 역 구내를 비추는 CCTV 모니터 22대와 전동차의 움직임을 200m 간격으로 표시하는 운행상황도, 전력공급을 나타내는 전력상황도 등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나타나 있다.

운전사령 2명이 운전상황판 바로 앞에서 각각 15개 역을 나누어 감시하고 그 뒤에는 주사령이 운전사령실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경찰의 수사내용과 지하철공사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운전사령실의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사고 발생 직전=사고가 발생하기 3분 전인 오전 9시49분경 근무자 3명은 여느때처럼 모니터와 운행상황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령실은 평온한 분위기였다.

▽사고 발생 순간=오전 9시52분45초. 문제의 1079호 전동차가 중앙로역 하행선으로 들어와 멈추고 승객들이 승하차를 하는 장면이 사령실 모니터를 통해 나왔다. 그러나 담당 사령은 모니터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9시53분7초. 열린 출입문을 통해 승객들이 분주히 승강장과 객차를 오가는 모습이 모니터에 비쳤다.

9시53분12초. 방화범 김대한씨가 하반신에 불이 붙은 채 객차 밖으로 뛰어나왔지만 이 장면도 놓치고 말았다. 다른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며 대피하는 사이 화면에는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9시53분27초에는 완전히 연기로 시야가 가려졌고 9시53분33초경 열차는 완전히 작동을 멈췄다.

이때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사령들은 중앙로역을 출발해야 할 열차가 그대로 정차해 있자 모니터를 봤지만 그 모니터는 이미 다른 역의 상황으로 바뀌어버렸다.

사령 방씨가 “1079호, 1079호”를 10여 차례 외쳤지만 기관사 최정환씨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운전석을 빠져나간 뒤여서 무전을 받지 못했다.

곧이어 9시55분경. 중앙로역 역무실에서 한 역무원이 비상통신망으로 다급하게 “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려왔다. 사령은 그제서야 비상사태임을 깨닫고 중앙로역의 상황을 보기 위해 모니터를 연결했지만 이때는 이미 CCTV가 거세진 불길에 파손돼 까만색 화면만 나왔다.

사령들은 즉시 모든 열차에 “중앙로에 진입시 조심해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라고 긴급 무전을 날렸다. ‘그 자리에서 정차하고 중앙로역에 진입하지 말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1080호 도착 상황=9시55분30초. 사령들이 운행중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비극의 1080호 전동차는 대구역을 출발했다.

9시56분30초. 1080호 전동차 기관사 최상열씨는 긴급무전을 듣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화재인지 모르고 중앙로역으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연기가 자욱하기는 했지만 사령실에서 추가 지시가 없어 그냥 역에 정차를 했다.

9시57분. 화재로 인한 합선으로 단전이 됐고 순간 상황실의 전력상황도에는 영대병원-신천구간 8개 역(2개 섹터)의 단전을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사령실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며 3명의 사령이 열차 운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짧은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계속 1079호를 호출하며 1080호에는 “대기하고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라”고 지시했다.

사령실 무전기를 통해서 운전사 최씨의 “엉망입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3차례 전력을 공급했지만 바로 다시 단전됐다. 사령들은 전력이 다시 공급될 것으로만 믿고 매달렸지만 복구불능 상태를 뒤늦게 깨닫고 화재신고가 들어온 뒤 7분이나 지난 10시2분에야 승객들의 대피를 1080호에 지시했다. 그러나 그때는 엄청난 유독가스와 열기가 승객들을 덮치고 있었다.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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