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존 관행에 스스로 못질…검찰 살인피의자 석방

  • 입력 2002년 11월 13일 19시 01분


살인 피의자 3명에 대한 검찰의 석방 결정은 한마디로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강압 수사에 의한 진술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강압 수사에 쐐기〓검찰은 살인 사건 당시 피의자 3명의 행적에 대한 간접 정황 증거를 상당부분 확보해 놓고도 이들을 모두 풀어줬다.

이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서 조사받던 피의자 조천훈씨가 숨지고 다른 피의자 4명도 가혹 행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백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석방 결정 과정에서 수사팀 내부에는 열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공들여 수사해 자백까지 받아낸 수사기록들을 완전히 휴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

그러나 검찰은 피의자가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한 ‘임의성이 없는 자백’에 대해 엄격한 증거 법칙을 적용해야 하고 앞으로 선례가 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의 결정은 다른 사건 수사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사건 내사 단계에서부터 자백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탈피, 피의자가 범죄를 실토할 만한 다른 물증을 찾는 방식으로 수사 관행을 바꿔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증거 없이 사람을 먼저 불러놓고 범죄를 캐묻는 잘못된 수사 관행도 이제 설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미궁에 빠진 2건의 살인 사건〓검찰은 경기 파주시 스포츠파 조직원들이 자행한 2건의 살인 사건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검찰은 살인 사건 공범으로 구속된 피의자 3명에게서 받아낸 자백 외에는 범죄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1998년 6월 자살로 처리된 파주 스포츠파 전 두목 박모씨 사망 사건과 99년 10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사채업자 이모씨 살인사건을 이들이 저질렀다는 ‘심증’은 강하게 갖고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것.

스포츠파는 경기 파주시 일대의 신흥 폭력조직으로 원래 두목은 숨진 박씨였으나 조직원 가운데 신모씨(수배중)가 두목이 되면서 내분이 격화돼 2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98년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신씨는 조직원들에게 “박씨에 대해 작업하라”는 메모를 보냈고 조직원들은 며칠 뒤 박씨 집을 찾아가 동맥을 끊어 살해했다는 것.

검찰은 또 이들 조직원이 99년 10월 박씨 살해사건 전말을 알고 스포츠파 두목 신씨에게 돈을 뜯어내려던 사채업자 이씨를 회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시점에서 3∼4년이 흘러버렸기 때문에 추가 물증 확보가 어렵고 피의자들이 이미 한차례 수사를 거쳐 향후 수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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