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이트 망령 여전히 살아있다

  • 입력 2002년 4월 21일 18시 08분


자살 방지를 목적으로 한 ‘안티 자살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알게 된 김모씨(34)와 여고생 2명이 19일 아파트에서 함께 투신자살한 사건의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사이트 유해 논쟁도 뜨겁다.

▽추가 자살 기도〓숨진 김씨와 이전에 몇 차례 동반자살을 기도했던 송모씨(25·대학생)가 19일 오후 5시15분경 한남대교 위에서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미수에 그쳤다.

송씨는 김씨와 안티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알게된 뒤 영등포 H아파트를 사전답사하며 동반자살을 꾀했으나 포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 S병원에 입원 중인 송씨의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불러 자살을 기도한 이유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송씨가 함께 자살을 논의했던 김씨가 숨지자 죄책감에 시달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사이트 논란〓두 학생이 가입한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인터넷사이트는 한 정신과 전문의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로 및 용기를 주기 위해 개설한 것.

자살한 여고생들의 부모와 학교관계자들은 이들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두 학생의 자살 충동이 자살관련 인터넷사이트를 드나들면서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민성길(閔聖吉) 교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사를 소통하면서 두 학생의 자살충동이 확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함께 숨진 30대 김모씨는 사이트상에서 자주 “사는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등 매우 염세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파괴와 죽음을 뜻하는 힌두교의 시바와 칼리신을 숭앙해 자신의 휴대전화 초기화면에 ‘칼리 시바 통일 부활’이라는 문구를 넣었고 시바신의 그림을 갖고 있었다.

서울 YMCA 열린정보센터 김종남(金宗男) 사무국장은 “자살을 막는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자유게시판 운영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사이트가 자살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제주대 의대 홍강의(洪剛義) 학장은 “자살을 생각한 두 학생은 겉으로는 정상적이었지만 평소 주위에 정서적으로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이들이 왜 자살을 택했는지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통해 다른 자살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네트 오병일(吳炳一) 사무국장은 “인터넷은 단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라며 “모든 것을 인터넷사이트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자살의 진짜 원인에 대한 책임회피”라고 말했다.

▽자살사이트 실태와 대책〓경찰청 사이버대응테러센터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상에서 자살을 권유하거나 수법을 알려주는 사이트는 없다. 인터넷포털서비스업체 ‘다음’은 검색어로 ‘자살’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프리챌’에는 10여개의 자살 관련 사이트가 있지만 대부분 폐쇄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검색사이트에 등록되지 않은 자살사이트가 수십개나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번에 밝혀진 대로 ‘안티사이트’도 역이용될 소지가 있다. 사건 이후 문제의 사이트 운영자는 자유게시판을 폐쇄했지만 이 같은 안티동호회가 50여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법 행위가 없는 한 경찰은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전기통신법에 따라 정보통신부에 자살사이트 폐쇄를 요청하는 것이 전부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이재승(李在勝) 팀장은 “실명을 사용하게 해 게시판 접근을 어렵게 하는 등 사이트 운영자나 인터넷 서비스업체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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