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테러대책반 동행취재]"불끄기보다 더 바빠요"

  • 입력 2001년 11월 9일 18시 25분


“종로구 송월동 백색가루 발견입니다.”

‘제39회 소방의 날’인 9일 오전 11시25분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시종합방재센터 지하 벙커.

신고 전화를 받던 최홍균 테러대책팀장의 목소리를 듣고 대기실에 있던 테러대책반원들이 서둘러 출동 준비를 했다.

구조대장과 특수구조대원 군화학부대요원 등 9명의 대책반원들은 침착하지만 재빠른 동작으로 지하 벙커를 빠져나와 현장확인반과 상황처리반 등 2개 조로 나눠 2대의 차량에 탔다.

경광등을 요란하게 울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반원들은 묵묵히 침투복과 일회용 화학보호복을 입고 전투화 덮개를 신고 화학 및 생물 작용제 탐지 키트 등의 장비를 챙겼다.

10분 후 신고된 지점에 도착하자 이미 출동한 종로소방서 구조대원과 서대문경찰서 형사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문제의 소포를 지퍼백에 넣어두는 등 1차 처리는 끝나 있었다.

대책반원들은 소포 꾸러미를 들고 지하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3분 후 반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안심하세요. 탄저균이 아니라 칼슘 영양제입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고자는 “하도 세상이 어수선해서…”라며 머쓱해했다.

“요즘엔 불을 끄거나 구조하기 위해 다니기보다 백색가루 처리하느라 바쁩니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듯 백색가루가 모두 탄저균은 아닌데 사람들이 무척 불안해합니다.”

지난달 16일 생화학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발족된 서울시 테러 대책반은 모두 28명으로 구성돼 있다. 14명이 한 조를 이뤄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탄저균이 발견된 사례는 없지만 탄저균 오인 신고는 하루에도 10여건씩 잇따르고 있다. 송월동의 칼슘 영양제 소동은 대책반이 접수한 229번째 신고였다.

신고된 백색가루 가운데 33건이 밀가루로 판명났다. 또 15건은 시멘트가루, 10건은 가루비누였다. 나머지는 분유 커피크림 소화기분말 소다 횟가루 제습제 등이다.

9일 오전 7시48분에는 서대문구 북가좌1동 길에서 백색가루 발견 신고가 들어왔으나 확인한 결과 설탕가루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8일 오전에는 마포구 아현동 주택가에서 백색가루 소동이 있었지만 세제가루였다.

이 밖에 제주에서 친척이 보내준 귤상자에 묻은 흰색 곰팡이를 보고 기겁한 주부, 미국 언론사에서 온 우편물을 뜯어보지도 않고 신고한 모 언론사 직원, 이스라엘 대사관이 입주한 건물에 배달된 소포 꾸러미를 보고 놀란 회사원, 테니스 코트의 선을 긋다 주변에 흘린 횟가루를 보고 신고한 아파트 주민 등이 이들 대책반원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흰종이를 잘게 잘라 길거리에 뿌려놓는 고약한 모방 범죄자도 있다.

모든 신고내용이 ‘별것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건에 대비해 신고가 들어오면 대책반원을 비롯해 관내 소방서와 경찰서 보건소 관계자 등 30명 안팎의 인원과 5, 6대의 차량이 동원된다.

대책반 김형윤 상황처리반장은 “출동 인원과 차량이 많은데다 신고 장소를 통제하느라 해당 지점은 도시 기능이 일시 마비된다”며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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