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33명 "사법개혁" 사이버結社…법원행정처에 사이트 추진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30분


현직 부장판사가 전국의 법관 32명과 함께 현행 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논의하는 인터넷 토론장 개설을 추진해 사법부 내에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지법 문흥수(文興洙)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전국의 판사 1700여명에게 ‘법의 지배 확립을 위한 사법부 독립과 법원민주화를 생각하는 법관들의 사이버 공동회의를 만들자’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문 판사는 메일에서 “중진법관의 빈자리를 연소법관이 채우는 기형적 사법부 인사, 퇴임법관들이 변호사로 나서는 후진적 전통, 사법행정을 맡은 소수에게 선처를 기대하다 승진에서 밀리면 말없이 법복을 벗는 관행이 계속 문제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판사는 “이 같은 사법위기가 온 데에는 법관들이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며 “판사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이를 비판하는 것이 점잖지 못하다는 생각 등으로 뒤에서 몇 마디만 하고 체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판사는 이어 “법관 인사, 신분보장 문제 등 사법부 독립과 법원 민주화를 저해하는 문제들을 논의, 단합된 대안을 제시하고 때로는 엄중히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양심있는 법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판사회의마저 유명무실화된 상태에서 법관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문 판사의 제안에 찬성하는 의견을 e메일 답신 등을 통해 알린 판사는 지금까지 32명. 문 판사는 15일 이들과 함께 조만간 법관 전용통신망에 ‘공동체 커뮤니티’를 개설해 줄 것을 법원행정처에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법관 인사시스템과 임용제도, 법관 인사자료 공개 문제 등에 대한 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문 판사는 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 직후에도 사법부의 인사 문제와 잘못된 관행 등을 처음으로 법관 전용게시판에 띄워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 그는 그 후에도 법률전문지 등에 게재한 글을 통해 꾸준히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사실에 근거한 토론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이버 공간의 특성과 판사들의 집단행동, 문제의 확대재생산 등을 우려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판사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법관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마땅한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사법부의 현안 등을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발전적인 개선안을 만들어내려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며 동참의 뜻을 밝혔다.

반면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현실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법관 승진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계속 제기돼온 문제인 만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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