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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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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의 징후들은 수사 책임자들의 공식 발언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듣기에 따라서는 검찰이 과연 진상규명 의지를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할 만한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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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의 징후〓이번 수사를 지휘 중인 한 간부는 4일 공식 브리핑에서 “계좌추적이 80%가량 진행됐는데 돈이 로비에 사용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며 “솔직하게 이 사건이 일반사건이었다면 그냥 털어 버리면 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3일에는 “별것도 아닌 이씨 등이 너무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씨가 광주에서 그렇게 많은 빚을 져 (광주 지역을) 어지럽혔는데 누가 얼마나 그 뒤를 봐줬겠느냐”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간부급 검사는 “수사가 여론의 의혹 제기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할 수는 있지만 검사가 결과를 예상하고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가 작더라도 아무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달 27일까지 이씨와 정치권의 관련여부에 대해 “나온 게 없다”거나 “현금으로 빠져나간 돈이 많아 계좌추적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씨는 그러나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병윤(朴炳潤) 의원과 조홍규(趙洪奎·한국관광공사 사장) 전 의원에게 수백만∼2000만원의 후원금을 줬고 강운태(姜雲太) 의원을 만났던 사실을 털어놔 검찰을 무색케 했다.
또 검찰은 이씨가 주가조작에 이용한 보물선 인양사업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李亨澤)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통해 소개받은 과정에 대해 수사 중이지만 이 전무 등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 아직 없다고 4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이 가야 소환할 수 있다”며 “이용호씨의 입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없는 걸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무를 이씨에게 소개해 준 허옥석씨(42·구속)가 이씨의 해외전환사채(CB) 10만달러를 인수해 3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확인되는 등 새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어 이 전무에 대한 조사가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특별감찰본부 수사〓지난해 서울지검의 이용호씨 불입건 과정을 조사 중인 특별감찰본부(한부환·韓富煥 대전고검장)는 4일 서울지검의 전 지휘부 3명에 대한 계좌추적 자료 일부를 대검에서 넘겨받아 정밀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또 심모씨와 강모씨 등 당시 진정인 측 3명과 이씨를 변호사에게 소개시켜준 정모씨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특감본부는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당시 지휘부가 “이씨를 불구속 기소하자”는 주임검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건을 입건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 그 책임을 물어 지휘부 일부를 징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감본부 관계자는 “일부에 대해 사건을 석연찮게 처리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징계를 넘어선 형사처벌은 어렵다는 것이 수사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