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차례 억울한 옥살이…빗나간 공권력에 망가진 인생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38분


김모씨의 외삼촌 임광옥씨
김모씨의 외삼촌 임광옥씨
“법이란 게 이런 건가요. 한 인간의 삶을 이렇게 망쳐놓을 수 있습니까.”

검찰이 피의자의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가정파괴범으로 몰려 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모씨(28). 법원은 26일 국가(검사)의 잘못을 인정해 김씨에게 2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김씨는 이 판결소식을 모른다. 그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96년 서울 영등포 일대 연쇄 강도 강간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97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지만 그 때의 충격으로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그의 변호인인 허경모(許京模)변호사는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김씨를 수도 없이 찾아보았지만 행방을 몰라 전화통화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외삼촌 임광옥(任廣玉·60)씨는 “광주 어딘가에서 품팔이를 하며 떠돌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다”고 말했다.

▽1차 억울한 옥살이〓경찰은 94년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연쇄 강도 강간사건이 발생하자 사건현장 근처를 배회하는 김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김씨는 영문도 모른 채 “잘못했다”는 말을 연발했고 결국 95년 1월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외삼촌 임씨가 전남 해남의 가난한 농부인 김씨 부모를 대신해 사건현장을 수차례 찾아가는 등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항소심에서 무죄를 입증했고 김씨는 1년여 만에 풀려났다. 김씨의 수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차 억울한 옥살이〓경찰과 검찰은 96년 10월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자 다시 김씨를 구속기소했다. 이번에도 직접증거는 없었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범인을 봤다는 ‘증인’ 4명만이 있었다.

임씨는 “조카가 지능이 좀 모자라는 데다 중학교만 나오고 막노동을 하며 살아오기는 했지만 순진하고 착했다”며 “사건이 새벽에 일어난 탓에 매일 인력시장에서 줄을 서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던 조카가 범인으로 몰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검찰이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여성의 속옷에 묻은 정액이 김씨의 것이 아니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결과가 나왔지만 재판부에 내지 않았다는 점. 김씨는 다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또다시 1년여를 복역하다가 항소심 재판부가 의뢰한 유전자 감식결과가 나오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상고를 했지만 98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충격과 행방불명〓이 과정에서 김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임씨는 “시골동네에서는 조카가 강간살인범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조카는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와 수군거림을 견뎌내지 못해 혼자 산 속에 들어가 몇 시간씩 멍하니 앉아 있는 등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더니 어느 날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임씨는 “공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조카의 인생을 짓밟았다”고 말했다.

96년 사건 담당검사였던 하모 검사(현재 법무부 산하기관 근무)는 “피해자들이 모두 김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정반대의 증거가 나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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