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안에서는 청문회 밖에선 賞받고

  • 입력 2001년 1월 6일 20시 58분


공적자금 국정조사 증인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이헌재(李憲宰)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미국으로부터 뜻밖의 큰상을 받게 됐다.

미 워싱턴 공공연구재단인 윌슨센터는 5일 이 전장관을 올해의 윌슨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상 이유는 그가 97년 환란직후 금융위기로 어려웠던 한국경제를 살려내고 금융 구조개혁 선봉장 역할을 해냈다는 것. 한국이 아시아 경제개혁과 회생의 귀감이 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이 상은 28대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68년 초(超)당파적 기관으로 설립된 윌슨센터에서 해마다 공공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는 이 전장관이 처음이다.

밖에서 이렇게 큰상을 받은 이 전장관은 그러나 불행히도 이 달 16∼20일 열리는 ‘공적자금 운용실태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전현직 장관들과 함께 청문회 증인으로 불려나가야 할 처지다. 금감위원장과 재경부장관을 지낸 이 전장관은 여야 의원들의 매서운 질의를 혼자 방어해야 한다.

이 전장관은 지난해 5월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바통을 넘겨받은 진념(陳稔)장관은 이 전장관의 정책을 뒤집어 추가로 공적자금을 40조원이나 더 만들어달라고 국회에 요청한 상태. 밖에서는 이 전장관을 환란을 이긴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평가하고 있는 반면 나라안에서는 공격을 받고 있는 묘한 처지에 있는 셈.

새해 1일 자택에서 신년 인사차 방문한 기자들을 맞은 그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신 기자들과 ‘곡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지난해 8월 재경부 장관을 끝내던 날 급성 맹장수술을 받았던 그는 “수술 때문에 몸 안에 있던 기가 빠져나갔는지 요즘 공이 멀리 안 나간다”며 “골프 평균타수가 84, 85타나 된다”고 말했다. 평소 어눌한 듯 하지만 우회적인 표현으로 정곡을 찌르는 그가 청문회에서 어떤 발언을 할지 기대된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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