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曜쟁점토론]지구당 유급직원 허용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0분


여야가 지구당에 유급직원을 둘 수 없도록 개정한 정당법을 유급직원을 둘 수 있도록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정치권은 17일부터 시행될 개정 정당법이 중앙당과 시도지부에만 유급직원을 허용하고 있어 지구당 간부를 의원보좌관으로 돌리는 등의 편법이 생겨나는 등 정치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지구당을 축소하는 척했던 정치권이 다시 원상회복을 노리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여론이 높다.

[찬성]선거제도 고쳐야 폐지 가능

지구당 유급 직원의 폐지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청산이라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과다한 지구당 운영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급 직원 비용을 줄이자는데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경험한 현실 정치에서는 유급 직원을 당장 완전히 없애자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지구당이 있는 한 지구당 상근자인 유급 직원은 필요하다. 회계 및 재정 관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적인 활동과 민원 종합, 행정 및 사무 총괄을 할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업무 연속성과 책임성 유지를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만으로 지구당을 운영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최소한의 활동과 이에 대한 기본적인 급여의 지출은 불가피하다.

만일 없애야 한다면 현행 지구당 체제를 바꾼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선거구제도가 중대 선거구제로 바뀌면 소선거구제하의 지구당 체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같은 정당 소속 후보가 몇 명씩 나올 것이므로 ‘1선거구 1지구당 1지구당위원장 1후보’라는 현행 지구당 체제는 의미를 상실한다.

아마 각 정당은 현 지구당을 연락소 정도로 축소하고 시도지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할 것이다. 그러면 방만한 체제가 정비될 것이고 유급 상근자를 여러 명 둘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후보나 의원별로 후원회 사무실이나 교육원 문화원 연구소 등의 변형된 사무소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지금의 지구당 비용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지구당 체제를 폐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제는 높은 수준의 자율적 참여 의식을 가진 숙련된 자원봉사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론 최소한 생계 걱정은 하지 않는 조건을 겸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때에도 엄밀히 따지면 한두 명의 유급 직원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다수의 아르바이트 또는 자원봉사자로 유지되는 지구당 체제는 현재와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만일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급 직원을 없애면 오히려 부작용만 커질 가능성이 크다. 유급 직원을 둘 수 있도록 한 후원회를 활용해 지구당 사무원(실질적으론 후원회 유급 사무원)에게 급여를 지급하거나, 의원의 경우 보좌관이나 비서관들로 하여금 지구당을 관리하게 하는 등 변형과 파행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는 그나마 조금씩 투명하고 정상화하기 시작한 정치문화를 다시 은폐와 변칙으로 되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유급 직원을 없애려면 우선 선거제도를 바꾸든가 아니면 유급 직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지구당 관리의 관행을 보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구당 유급 직원 수를 제한하고 급여 수준의 상한선을 정하고 법적으로 등록하도록 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정치 비용의 최소화, 효율화, 투명화에 부합하는 길이다.

이인영(민주당 구로을 지구당 위원장)

[반대]권위주의 정치질서 강화 우려

정당의 지구당에 유급직원을 둘 수 없도록 연초에 개정한 정당법에 대해 정치권이 재개정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지구당 유급직원 문제는 단순히 비용절감 차원이나 정치권의 필요성 차원에서 이해할 일은 아니며 정치개혁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느 선진국을 보더라도 지구당의 자율성 없이는 정당정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용이 들어간다고 해도 지구당 유급직원제도가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라면 국민은 이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유급직원제도의 요구 배경이 전혀 개혁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기존의 지구당은 민주주의의 학교로서의 역할보다는 상의하달의 말단 통로로서 오히려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정치풍토를 온존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지구당 풍토에 가까스로 사라진 유급직원을 다시 두는 것은 권위주의적 정치질서를 강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정치권이 지구당 유급직원을 되살리려고 한다면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중앙당 유급직원을 현행 150명 이내에서 10여명 이내로 대폭 줄이는 등의 조치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정당의 지구당이 지역사회 부패구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불식시킬 수 있는 별도의 방안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매일 상대를 공격하는 논리나 개발하려는 거대 중앙당의 유급직원은 그대로 두고, 고비용 정치의 대상으로 몰려 사망 직전까지 갔다가 정당 민주화 논리에 의해 기사회생한 지구당에 유급직원을 다시 두겠다는 것은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비민주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또 정치권은 17일부터 시행하게 돼 있는 이 법 조항을 시행해 보기도 전에 재개정할 경우 조령모개식 입법행태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개정 당시에는 지구당 폐지를 전제로 해 유급직원 규정을 두지 않았다가 막판에 지구당 유지 방침으로 변경되었지만 이 조항을 미처 손질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나, 이는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정당법을 졸속으로 개정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입법부가 자기 손으로 만든 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다시 고친다는 것은 법이 사회적 약속이 아니라 특권층의 편익을 보장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법을 무시하는 잘못된 풍조를 만들어 온 것도 부족해 스스로 만든 법을 시행 전에 뜯어고치느냐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도 한번쯤은 의식하길 바란다.

정치인들이 지금 무엇보다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국민의 불신이다. 지금 같은 정치불신 상황에서는 중앙당 직원을 대폭 축소하고 지구당 유급직원을 두자는 건설적인 제안도 하기 어렵다.

지구당 운영재원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마당에 지구당 위원장이나 국회의원 개인의 사조직처럼 인식되는 지구당에 유급직원까지 두자는 것은 합당한 요구가 아니다.

김석수(정치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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