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癌 투병 어머니 위해 수감 아들 일시석방

  • 입력 2000년 8월 4일 23시 12분


“양배야, 얼굴도 못보고 죽는 줄 알았는데…. 아픈 데는 없고? ”

4일 오후 11시10분경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 위암 말기 상태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박영숙씨(50·여·충남 서산시 음암면)는 뜻밖에 장남 전양배씨(25·전 충남대 공대 학생회장)가 나타나자 어안이 벙벙했다.

전씨는 한총련 활동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홍성교도소에서 복역 중 법무부의 선처(형 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로 이날 어머니를 만났다.

박씨는 “내 몸도 그렇지만 눈만 감으면 네가 좁은 감옥에서 쪼그리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이제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 것 같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들 전씨는 와락 어머니를 안고 “어머니, 꼭 나으실 거예요. 용기 잃지 마세요. 제가 나오면 전국을 여행다니셔야 하잖아요”라며 격려했다.

박씨가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은 한총련 대의원이던 전씨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가입죄로 수감된 후 2개월 만인 98년 11월.

박씨는 “당시 큰아들은 감옥에 있고 둘째 아들은 군에 있어 혼자 수술실에 들어갔다”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암세포가 급격히 퍼지던 올 5월부터 아들을 만나기 위해 법무부에 탄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전씨의 친구와 이웃 주민들도 박씨를 돕기 위해 400여장에 이르는 장문의 탄원서를 법무부에 보냈다.

묵묵부답이던 법무부가 마침내 이날 2박3일간의 형 집행정지 결정을 내려 어머니를 만나도록 배려한 것.

전씨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죽어도 쓰기 싫다던 준법서약서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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