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 죽어간다]정책부실…예산부족…실태파악도 안돼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지하수 난개발과 이에 따른 오염이 심각한데도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종합적인 관리체계도, 통제수단도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감사원 실태 조사를 계기로 “지표수 위주, 댐 건설 중심의 수자원 정책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지하수 관리 체계를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급한 지하수 공유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물이 부족하면서도 관개농업을 일으킬 만큼 치수(治水)에 성공한 나라. 비결은 지표수는 물론 지하수까지 국가의 공적 재산임을 분명히 하고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있기 때문.

한국법제연구원 오준근박사는 “지하수 공유화는 개인의 재산권과 직결되므로 엄밀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물부족 사태에 대처하고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극 검토할 때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가한 감사원 관계자는 “지하수를 공유화해 원수대금을 징수, 지하수 관리재원을 마련하고 그 재원으로 지하수 기초조사 및 관측망 등 핵심 인프라와 정보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령 정비와 전담부서 설립▼

현행 지하수 관련 법령은 건설교통부가 관장하는 지하수법을 비롯해 온천법(행정자치부), 먹는물 관리법(환경부),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농림부) 등으로 난립해 있고 규정도 허술한 만큼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마구잡이식 지하수 개발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지반침하나 오염으로 인한 피해에 책임지는 기관이나 통제 수단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또 현행 규정에서는 하루 30t 미만의 소형 관정일 경우 허가는 물론 신고 대상에서도 제외돼 전체 지하수 관정 97만여개의 81.6%(사용량 58.3%)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소형 관정도 허가를 얻어 시공하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정상(韓楨相)전지하수환경학회장은 “잠재 오염원 방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오염부담금을 징수하거나 오염복구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도록 지하수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령 정비와 함께 지하수를 전반적으로 감독 관리할 과(課) 단위의 전담 부서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놓고 “지하수는 개발보다는 보전이 중요하므로 환경부가 총괄해야 한다”는 의견과 “지하수는 수자원이므로 현행대로 건설교통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있다.

한편 농업기반공사 이병호(李炳鎬)지하수관리부장은 “농업용수의 51%를 지하수로 공급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38만공을 개발했지만 유지 관리를 위한 예산은 한푼도 없다”고 밝혔다. 정부조차도 지하수 관리 예산이 없으니 민간 개발업자들만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다.

▼폐공 대책▼

정부는 5월말 일간지 광고를 통해 올해 말까지 방치된 폐공을 자진 신고할 경우 벌칙 면제 등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

현재 폐공은 지하수 개발자가 의무적으로 메우게 돼있지만 대다수의 개발자들이 지하수를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거나 물이 마르면 그냥 방치하고 만다. 폐공을 메우는 데는 150만원 가량이 들지만 개발업자들은 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 지하수법은 폐공을 메우지 않을 경우 최고 1년의 징역이나 500만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지만 고발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폐공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실제로 고발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총리실 산하 수질개선기획단 김상권사무관은 “지하수 개발 때 사전에 수량 및 수질에 대한 정확한 조사도 없이 굴착을 하고 있어 실패공을 양산하고 있다”면서 “사전에 수량 수질 조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 154개에 불과한 지하수 광역 관측망을 지역 실정에 맞게 대폭 늘려야 한다는 지적. 한국자원연구소 성익환(成翼煥)박사는 “폐공을 찾아내 무조건 메우고 새로운 관정을 개발하기보다는 복원하거나 관측공 등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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