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전체근로자의 52% 비정규직 인권사각지대로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가 매년 급증하면서 올 1월말 현재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심각한 고용구조 왜곡으로 비정규직의 상당수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판단, 올해 임금교섭에서 주요이슈로 제기할 방침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최근 5년간 급속히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95년 상용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 1278만4000명의 58.1%인 742만9000명에 달했으나 계속 감소해 올 1월엔 전체근로자의 47.7%수준인 609만4000명선으로 줄었다.

반면 임시 근로자는 354만5000명에서 418만3000명, 일용 근로자는 180만9000명에서 228만9000명으로 각각 증가해 전체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1.9%에서 52.3%수준으로 높아졌다.

이처럼 비정규직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노사 양측의 시각은 엇갈린다. 노동계는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정규직보다 임금을 적게 주려는 사용자의 의도”라고 주장하는 반면 재계는 “고용형태가 다양해지고 계약직 또는 파트타임 등을 선호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는 등 노동시장이 유연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고액의 연봉을 받는 고급 계약직 근로자, 프리랜서 등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비정규직 채용 방식은 다양하다. 구조조정으로 해고한 뒤 3∼6개월 단위의 임시직으로 다시 채용하는 방법, 분사를 통해 별개 회사로 만든 뒤 다시 모기업과 계약토록 하거나 기업별로 파견업체를 설립하는 방식, 애초부터 비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는 방식 등 여러 갈래다.

노동계는 이들이 똑같은 일을 하는 경우에도 정규직의 40∼80%정도의 임금을 받고 노동기본권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이 최근 기관지 ‘노동과 세계’(1월7일)를 통해 소개한 판촉 아르바이트 박모씨(43·여)의 경우.

물건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서울의 한 대형 할인점에 파견된 박씨는 물건을 파느라 오후 내내 소리를 지르고 하루에도 설탕 식용유 음료수 등이 든 박스를 100개 이상 옮기느라 허리와 팔의 인대가 늘어났다. 그러나 정규직원처럼 병가를 낼 수 없다. 할인점에서 납품업체로 연락해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

박씨가 이렇게 오전 9시반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해 받는 일당은 2만500원으로 월급으로 치면 53만원 수준.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원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생리 월차 휴가를 챙기지 못하는 것은 물론 휴가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수당으로 계산해주지도 않는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고용된 여성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도 사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해 정규직 조합원 5만명이 1만원씩 내 5억원을 조성한 다음 비정규직 조직화 및 각종 법 제도 개선에 사용하는 등 대응방안을 강구 중이다. 한국노총도 기존 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보장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 규정을 마련하고 단체협약 혜택이 비정규직에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독려키로 했다. 그러나 노조 내부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용직 계약직 등 1년 미만 단기계약 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방침을 1월 확정한 데 이어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도 보완할 것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도 실제 사업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두 노총은 이구동성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상여금 학자금 퇴직금은 물론 모성보호 휴일휴무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며 정부의 철저한 근로감독을 요구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