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社-의료協 진료봉사]“휴가비 털어 구호품 마련”

  • 입력 1999년 8월 4일 19시 42분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지요.’

정부나 구호단체보다 먼저, 그리고 자신이 직접 준비한 정성어린 구호물품을 들고 찾아와 이재민들을 돕거나 위로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4일 오후 경기 연천군 청산면 백의2리. 수해로 부서진 한 집에서 목수 박경수(朴京秀·52·서울 구로구 고척동)씨가 구슬땀을 흘리며 못을 박고 있었다.

박씨는 이날 오전 자신의 봉고차에 대패 망치 등 각종 목공도구, 건자재 등을 잔뜩 실고 수마가 할퀴고간 백의리를 찾았다.

언론을 통해 수재민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장비를 챙겨 들고 연천군청의 자원봉사센터로 내려와 100여채가 침수된 백의리를 소개받은 것.

독실한 불교신자인 박씨는 “돈이 없어 몸으로라도 보시(布施)해야한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며 “집 한채를 지을 정도로 충분히 재료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앞으로 할 일이 더이상 없어질 때까지 이 곳에서 이재민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3일 오후 파주시 문산읍 문산초등학교 이재민 대피상황실에는 라면박스를 든 30대 남자가 두 아이를 앞세우고 찾아왔다.

이들은 태풍 대비책 마련을 위해 어수선한 상황실 한편에서 한동안 서있다 구호물품 접수직원에게 조용히 “라면과 생수 몇박스를 사왔는데 이재민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중에 감사편지라도 보낼 수 있게 주소와 이름을 남겨달라는 직원의 요구에 30대남자는 마지못한 듯 “미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지집에 놀러온 교포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휴가비와 아이들 용돈을 모아 구입한 것들인데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끝내 이름을 밝히기를 사양했다.

또 2일 이재민이 수용된 문산초등학교에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시민이 찾아와 “언론에서 이재민들이 물이 없어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수돗물을 받아왔다”며 물통 8개를 내려놓고 말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밖에 연천군 군남면의 한 중국집 주인은 자신이 침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민을 위해 자장면 200그릇을 내놓았고 부천시의 청년 10여명도 수련회를 위해 마련한 김밥과 감자 고구마를 물에 고립돼 있는 이재민들에게 나눠줬다.

통닭 몇마리를 튀겨 오거나 이재민에게 주라며 모기향 몇박스를 들고오는 사람도 있었다.

연천군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보통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작은 정성이 이재민들에게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호단체의 천편일률적이거나 사무적인 지원보다 더 큰 위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천·문산〓이헌진·박윤철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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