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공종식/어느 사형수의 편지

  • 입력 1998년 1월 5일 20시 48분


사형폐지운동협의회장인 이상혁(李相赫)변호사는 요즘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사형에 처해진 곽도화(郭桃花·36·여)씨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편지 때문이다. 곽씨는 90년 불륜관계의 공범과 짜고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왔다. 교도소에서 깨우친 한글로 쓴 곽씨의 편지에는 자신의 일생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했다. “결혼 초 3년 동안 부부생활을 한 뒤 10년 동안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 어린 남매를 혼자 키웠습니다. 10년 동안 친정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시동생들 용돈과 학원비까지 혼자 몸으로 대며 눈코 뜰새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게 돌아온 것은 고통 뿐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 교도소에서 배운 나눗셈을 혼자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고 당시의 근황을 전한 곽씨의 편지에는 어린 남매와 남편에 대한 죄스러움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저 때문에 딸아이가 학교도 못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제 자신이 밉고 싫어집니다. 저로 인해 남편이 비명으로 가신 것을 생각하면 백번 사죄한들 어찌 다 사죄가 되겠습니까.” 곽씨는 또 편지에서 같은 날에 사형이 집행된 공범을 설득해 재심을 부탁하는 등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도 보였다. “변호사님, 더 늦기전에 무지한 여인을 도와주세요. 제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이 없다보니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이변호사는 “지은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무지 때문에 죄를 지은 불쌍한 여인이었다”며 “얼마전 면회 갔을 때만 해도 영어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종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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