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즌, 감기환자는 알아서 출입을 삼가 주십시오」.
16일 오전 서울 A대학 도서관에 들어가던 영문과 4학년 김모씨(26)는 출입구에 나붙은 기막힌 문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불황으로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것은 다 압니다. 대학가에 낭만이 사라진 것도 알고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살아야 합니까』
30일의 대기업 입사시험을 앞두고 있는 김씨. 구직난에 서로를 위로해도 모자랄 판에 취업준비생끼리 벌이는 신경전이란….
도서관 한층한층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계단을 딛고 올라설 때마다 김씨는 「삐삐는 진동으로」 「캔음료는 밖에서 딸 것」 「구두 소리 또각거리지 말 것」, 심지어는 「신발 절대 벗지 말 것, 악취」라는 글귀 등과 마주쳐야 한다. 그는 그것이 「권유」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다.
살벌한 대학도서관. 서울 B대학은 구두 소리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의 분위기를 의식, 도서관 바닥에 충격흡수용 고무로 만든 카펫을 깔았을 정도다.
도서관 자리확보를 둘러싼 학생들의 「이전투구」도 문제. 이 때문에 대학측은 방(榜)과 함께 「자리선점(先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인당 1장씩만. 새벽반 학원수강이나 화장실 때문에 없었다는 변명도 절대 안통함」.
김씨는 매일 오전 6시면 열람실 자리에 꼭 붙어있어야 한다. 이 시간 자리검사를 통해 도서관측이 책이나 가방만 놓인 좌석을 가차없이 치우고 좌석표를 배부하기 때문이다.
밤 11시에도 최종 자리검사를 통해 다음날 자리확보를 위해 책가방만 남겨놓고 귀가한 학생들을 「색출」한다.
『얼마 전에는 학과에 들어온 입사추천서를 한 친구가 모두 들고 사라져 문제가 된 일이 있었어요. 요즘은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입사원서 낸 사실을 서로 밝히지 않아요. 경쟁자가 한명이라도 많아진다나요. 정말 살맛 안납니다』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