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본,지금은 어디에]출신 세대별로 『논공행상』

  • 입력 1997년 3월 29일 08시 28분


[전승훈·부형권·정위용 기자] 92년 대선 당시 金泳三(김영삼)후보의 핵심 사조직이었던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본사취재팀이 최근 선거당시 나사본 간부회원 1백여명의 명단을 입수, 추적한 결과 金賢哲(김현철)씨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30대 그룹들은 선거후 청와대 행정관으로 대거 진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선거때 도움을 준 40,50대 인사들은 정관계 공기업체 간부 등 각계에 두루 포진, 광범위한 논공행상이 이루어졌음을 입증했다. 나사본은 크게 △총괄본부(사무국 기획실)△홍보단 △조직본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핵심은 현철씨의 학연 인맥으로 이뤄진 비선조직인 사무국 기획실 언론분석반 여론조사팀 등 30대 그룹. 金爀珪(김혁규·현 경남지사)씨가 실장으로 있던 총괄기획실 멤버들은 현철씨의 사조직이었던 민주사회연구소 출신으로 서울대 고려대 80,81학번들이 주축. 거의 전원이 새정부 출범이후 청와대로 들어가 별정직 4급 행정관(정무 경제 공보 의전)으로 일하고 있다. 사무국장으로 대선자금을 관리했던 朴泰重(박태중)씨는 선거후 ㈜심우 파라오 우보전자 등 7, 8개 업체를 설립, 같은 사무국 멤버였던 白昌鉉(백창현)씨와 함께 선거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고용해 왔다. 朴寬用(박관용·신한국당 사무총장)씨가 본부장이었던 홍보단내 30대 그룹들도 대부분 청와대로 진출했다. 김영삼후보가 아침에 집을 나서 승용차안에서 조간신문을 볼 수 있도록 모든 신문을 스크랩해 보고하던 「언론분석실」멤버들은 고려대 연세대 78, 79학번들이 주축. 이들은 새정부 출범이후 청와대 공보비서 공보처전문위원 등으로 진출해 매일 언론의 논조를 분석, 청와대 및 장차관들에게 직보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밖에 홍보단내 여론조사실 朴鍾善(박종선·신한국당 서울 노원을지구당위원장)실장 및 「광화문팀」을 이끌었던 嚴涍鉉(엄효현·방송개발원장)씨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청와대 행정관 등으로 많이 나섰다. 沈完求(심완구·울산시장) 金佑錫(김우석·전 내무장관) 崔箕善(최기선·인천시장) 曺萬厚(조만후·정무1차관)씨 등은 잘 풀려나간 경우. 또 일부인사들은 한국가스공사 근로복지공단 도로공사 마사회 수자원공사 농어촌진흥공사 등의 사장 감사 비서실장 등으로 취직하거나 의원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취직을 하지못해 개인사업을 하거나 실업자로 있는 경우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사본 출신 한 인사(40)는 『청와대에 들어간 사람들 사이에도 직급의 차이에 따라 불만을 표시한 경우도 많았고 박태중씨가 운영하던 ㈜심우는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의 취업대기소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정된 청와대 행정관 자리에 선거때 함께 일했던 30대 그룹들을 챙겨주다보니 「무적근무」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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