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징용해법, 日 정치적 결단 촉구… 기시다 총리가 판단할것”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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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외교장관회담 결론 못내려
양국 정상간 풀어야할 단계로

박진 외교부 장관이 18일(현지 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일본 측에 성의 있는 호응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며 “(일본 측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에게 입장을 전하고 거기서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법 관련 한일 간 막판 최대 쟁점인 일본 피고 기업(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의 배상 변제금 참여에 대해 기시다 총리가 결단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외교 당국 간 고위급 연쇄 회담을 통해 이 쟁점에 대해 집중 협의했음에도 견해차를 완전히 좁히지 못한 만큼 이제 이 문제를 한일 정상 간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단계가 됐다는 것이다.

제59차 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한 박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은 이날 35분간의 회담에서 강제징용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박 장관은 회담 직후 취재진과 만나 “주요 쟁점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다. 서로 입장을 이해했기 때문에 이제 서로 정치적 결단만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배석한 외교부 당국자는 “핵심 쟁점(해결에 대한)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한 의견을 교환했고 (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의 정치적 결단, 정치적 의지를 표명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우리 관심사에 대해 일본 측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을 무게감 있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장관이 한 번 만나 끝나는 회담이 아니라 회담 결과가 본국에 보고된 뒤 지침을 토대로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 각급에서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 논의를 정치적 레벨로 끌어올리는 협의를 했다”고 전했다.

日 징용배상, 전범기업 참여가 관건… 韓日정상 결단에 달려




“日에 정치적 결단 촉구”





당국 협의만으론 징용 해결 한계
“최고위층 결단 없인 진전 어려워”
기시다, 낮은 지지율에 결단 힘들어
韓은 日기업 배상불참땐 여론 부담


징용배상 결론 못낸 韓日외교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18일(현지 시간) 뮌헨 안보회의장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과 회담 전 악수를 나누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과 관련해 “입장은 이해했으니 이제 서로 정치적 
결단만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징용배상 결론 못낸 韓日외교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18일(현지 시간) 뮌헨 안보회의장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과 회담 전 악수를 나누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과 관련해 “입장은 이해했으니 이제 서로 정치적 결단만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박 장관이 이날 하야시 외상에게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한 배경에는 한국 정부가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9개월 동안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만큼 했으니 ‘일본도 관계 개선에 생각이 있다면 응당 답을 할 차례’라는 단호한 메시지가 깔려 있다. 정부는 그간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 외에도 해법 마련을 위한 4차례의 민관협의회 개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 해법안 공개토론회, 피해자와 가족들의 직접 면담 등 국내 여론 수렴을 진행해왔다.
● “기시다 말고 최대 쟁점 해결 어렵다”
특히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만으로는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조성하는 배상 변제금을 위한 기금에 일본 피고 기업이 참여하는 문제를 둘러싼 핵심 쟁점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무급 차원에서 견해차를 좁힌 부분을 토대로 차관급에 이어 장관급 고위급 담판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일본이 양보안을 내놓기를 꺼리면서 기시다 총리의 태도 변화 없이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일본에서도 강제징용 문제는 양국 최고위층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만큼, 기시다 총리 말고는 일본 내부에서 이 문제를 뒤집거나 손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입어 피고 기업들은 배상 문제가 ‘국가 간 문제’라고 규정하며 배상 변제를 위한 기금 참여에 고개를 젓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결심이 없는 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의 결단도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일본 국내적인 요인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20∼30%대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러 있는 기시다 총리가 정치적 부담을 지고 한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외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다가 자민당 내부에서 정치적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기시다 총리로선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라는 극도로 민감한 문제에 손댔다가는 자칫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총리가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집권 자민당에서도 소수 파벌인 기시다 총리로서는 당내 다수인 보수 강경파의 반발을 딛고 한국에 양보를 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지난해 7월 사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었다. 외무성은 싸우지 않았지만 내가 정권을 잡으면서 많이 바꿨다”며 한국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고 밝혔다. 이런 기조는 현 자민당 보수 강경 세력에서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韓, 피고 기업 배상 불참 거부 정서 부담
한국 정부도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데 대한 국내 여론과 피해자들의 거부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자의적으로 피고 기업의 배상을 선뜻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인상을 주면 여론의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의 태도 변화만큼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을 설득하는 것도 큰 과제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고령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최대한 많은 유족을 만나 의견을 경청하고 청취하려는 것도 이들의 협조 없이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유족들마다 배상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일본 측은 최근 이러한 피해자와 유족 입장 등 동향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일부 피해자가 빠른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한국 정부나 청구권 협정의 수혜 기업, 일본 일반 기업 등 배상금 재원의 주체에 대해 열린 모습을 보이자 피고 기업의 배상 책임을 덜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뮌헨=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박진#징용해법#한일 외교장관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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