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北 또 영토 침범땐 9·19합의 효력정지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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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무인기 연내 생산 등 지시
北의 ‘강대강 대치’ 예고에 맞대응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과 같은 도발이 다시 일어나면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를 4년 3개월 만에 전격 중단시킬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스텔스 무인기(드론)를 연내 생산할 수 있도록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라며 “신속하게 (드론을 잡는) 드론 킬러 체계를 마련하라”고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조선(한국)은 명백한 적”이라며 신년 ‘강 대 강’ 대치를 예고하자 윤 대통령이 강수로 맞받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윤 대통령은 오전 비공개회의에서 국가안보실에 이같이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례적 수준을 넘는 압도적 대응 능력을 국군에 주문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9·19 군사합의 위반이 사실상 일상화되는 비정상적인 나날이 지속됐다”면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검토)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정수반이자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서도 9·19 군사합의를 멈춰 세울 수 있다”고 밝혔다. 군사합의 효력 정지 기준이 영토 침범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군은 이날 합동드론사령부 조기 창설 계획을 발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스텔스 무인기 개발은) 연내 남은 시간 동안 해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北 석달새 9·19합의 15차례 위반에… 尹 ‘효력정지’ 최후통첩


9·19합의 4년3개월만에 존폐 기로
MDL 사격훈련-정찰 맞불 가능성
정부 “美 우리 의견 전적으로 존중”
野 “군 미필 대통령이 긴장 높여”


윤석열 대통령이 4일 9·19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 가능성까지 시사한 건 최근 소형 무인기가 한국 영공까지 침범한 북한의 도발이 선을 넘었다고 보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앞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날린 데 이어 동·서해 완충구역 내 무차별 포격으로 9·19합의를 무력화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경고장까지 날린 만큼, 향후 북한이 영토를 침범하거나 7차 핵실험 등에 나설 경우 9·19합의는 4년 3개월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 北의 합의 위반, 지난해 10월 이후 집중
윤 대통령의 ‘효력 정지’ 언급은 향후 9·19합의 유지 여부가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압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우리는 정권 교체 후에도 9·19합의를 준수했다”면서 “북한이 무인기 침투 등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 도발로 화를 자초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26일 소형 무인기 5대를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내려 보낸 것은 9·19합의 위반이다. 합의에 따르면 MDL 기준으로 서부지역은 10km, 동부지역은 15km에서 무인기 비행을 금지하고 있다. 9·19합의는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9·19합의 위반이 급증했다는 점도 윤 대통령의 강경 주문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에 따르면 2018년 9·19합의 체결 이후 북한이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총 17건이다. 이 가운데 완충구역 내 연쇄 포격 및 무인기 침투 등 15건이 지난해 10월 이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이날 ‘합의 파기’까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남측에 긴장 고조의 책임을 떠넘기는 사태를 막고, 북한이 연이은 도발로 9·19합의를 존폐 기로에 내몬 주범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군 당국자도 “합의 자체를 없애자는 파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법률적으로 합의 파기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남북관계발전법 2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중대한 변화 발생, 국가안보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나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대통령에게 파기 권한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 “영토 침범 땐 대북 정찰·사격 훈련 재개 수순”
윤 대통령의 경고에도 북한이 MDL, NLL 일대에서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에 나설 경우 정부는 9·19합의 효력 정지 선언과 함께 육해공 완충구역에서 대북 정찰 및 사격 훈련 등을 재개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영토 침범은 물론이고 핵실험 등 중대 도발에 나설 때도 9·19합의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도 9·19합의 문제에 대해선 전적으로 우리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9·19합의 효력이 정지되면 군은 MDL 인근 사격장과 NLL 인근 해상에서 전차와 야포, 함정 등의 실사격 훈련과 함께 유·무인 정찰기의 근접 비행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맞불 도발’로 나올 경우 9·19합의는 사실상 파기 수순에 돌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북한 도발에 분노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9·19합의 파기 가능성을 밝힌 것은 전략적으로 잘못됐다”며 “북한이 남한에 적대행위를 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군 미필 대통령의 안보 무지와 무책임한 선동이 국민을 불안에 빠뜨린다”고 주장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북한#영토 침범#9·19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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