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보다 수위 올라간 ‘김종인 반성문’…文정권에 ‘경고’도

  • 뉴시스
  • 입력 2020년 12월 16일 07시 49분


김종인, 사과문 최종안 직접 수정…수위도 초안보다 세져
사과문에 집권여당의 책임 부각…사실상 '與 경고 메시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문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향한 경고 메시지도 함축돼있다.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문은 ‘탄핵 족쇄’를 끊고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를 의식해 승부수를 띄운 성격이 크지만, 여권을 향해 정권 탈환에 성공했더라도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 전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에서 보고받은 초안에 비해 최종안의 내용, 문구 등을 본인이 직접 ‘강한 톤’으로 수정했다고 복수의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전했다.

실제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나 사과보다는 탄핵 국면 이후 당의 모습을 성찰하는데 비중을 둘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 위원장은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 “특정 기업과 결탁·부당 이익” 등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직접적으로 나열하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공적인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국정에 개입해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엄하게 권력을 농단한 죄상도 있었다”며 박근혜 정권 붕괴의 시발점이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끄집어냈다.

회견문은 A4용지 한 장 반 정도의 분량에 불과하지만 ‘사죄’, ‘사과’, ‘반성’, ‘성찰’ 등과 같은 표현이 10차례 넘게 등장한 것도 김 위원장의 이러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위원장이 (전직 대통령 대신) 직접적으로 사과한 것 같다”며 “저는 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계열 당대표로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첫 대국민 사과문이란 점에서 정치권에선 ‘사과 수위’를 놓고 필요최소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내 반대 의견과 우려를 전달했던 주호영 원내대표가 사과문 초안을 받아본 후 공감했다는 전언도 보수 진영이 받아들일만한 수준일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두 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통 당원들의 존재를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일부 의원들의 ‘대리 사과’ 불만, 보합세 지지율 등을 의식해 김 위원장이 ‘집토끼’ 눈치를 보지 않겠냐는 시각이 많았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초안에 비해 최종안의 ‘톤’을 더 키웠고, 여기에는 민주당의 최근 일방적인 국회 운영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다는 게 주변 측근들의 설명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위원장이 회견문 초안을 받아본 다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들과 민주당의 상황을 고려해 내용을 직접 수정하면서 톤이 세진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잘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그렇고, 위원장 말씀을 민주당에 대입하면 그대로 일치하는 내용이 많다”고 전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국가를 잘 이끌어가라는 책임과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지만 집권 여당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이나 ‘통치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잘못’ 등은 4년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과 지금의 민주당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잘 보필하려는 지지자들의 열망에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실상은 친문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여권의 지지층 이탈과 반문(反文·반문재인)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유권자들이 지난 4·15총선에서 집권여당에 과반 의석을 만들어줬지만 추미애 법무장관·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나 공수처법 개정 강행 등에 따른 민심 이반으로 최근 민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세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와 법치가 오히려 퇴행한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며 깊이 사과를 드린다’는 표현도 야권에서 비판하고 있는 입법독재 등 여당에 대한 불만과 경고가 곁들여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국가를 잘 이끌어가라는 공동경영의 책임과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게 된다.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 정당의 잘못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우리 당 출신 대통령들의 잘못과 우리 당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적극 공감한다”며 “어느 권력도 국민의 위임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위임하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또한 우리는 문재인 정권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며 “어느 누구든, 어느 정당이든 대통령과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은 동일하다. 국민이 똑같이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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