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드 엄청나게 중요” 불만… 12시간뒤 정의용 “가볍게 안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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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뒤 첫 회견 열어 “美와 긴밀 협의”

헤더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8일(현지 시간) 오후 2시 50분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상황에 대한 회의 소식을 전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연기 결정에 실망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갑자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런 식으로 규정(charaterize)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사드 배치는 미국 정부에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약 12시간이 지난 9일(한국 시간) 오후 4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임명 20일 만에 첫 기자회견에 나섰다. 정 실장은 “사드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결정한 것으로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이 결정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계속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이날 정 실장은 사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날 오전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청와대는 사드에 대해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정 실장이 한미동맹 차원의 약속을 강조하며 사드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한국의 사드 배치 지연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기류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충격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사드 배치 결정의 불투명성에 공세를 펴던 기조를 바꿔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과 함께 최고위급 회의체를 가동해 사드 문제 등 한반도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을 여럿 했다. “사드는 주한미군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동맹을 방어하는 데 중요하다”, “사드 배치 문제는 당시(박근혜 정부에서) 동맹 간 (이미) 최고위급에서 결정된 사안이다”라는 게 대표적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인 공화당 소속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사드는 한국 국민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라며 “사드의 완전한 배치와 관련한 어떤 환경적 우려도 신속하고 철저한 검토를 통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 논의를 제외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중과 달리 미국에선 사드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리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13∼15일 토머스 섀넌 미 국무부 정무차관을 한국으로 보내 정상회담 일정과 현안을 조율하기로 했다. 정무차관은 미 국무부 서열 3위다. 일각에선 정 실장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의 잇따른 방미에 이어 섀넌 차관이 방한하는 등 한미 고위급이 이례적으로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협의하는 것을 두고 사드 논란 때문에 의제 조율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 당국자는 “미국의 한반도 라인,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 인선이 지연되는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가 ‘외교 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양새다. 특히 정 실장은 이날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미 간 약속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 배제 △국내적으로 필요한 절차 진행 △국익과 안보적 필요성 최우선 고려를 세 가지 원칙으로 제시했다.

환경영향평가로 사드 추가 배치가 지연되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 자체를 바꾸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며 수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전날에도 “이미 배치된 2대의 사드 발사대는 환경영향평가와 관계없이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 실장이 “국익과 안보적 필요성을 고려하겠다”는 원칙을 함께 제시한 것은 미국의 사드 배치 비용 및 한미 방위비 분담 재협상 요구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사드#한미#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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