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만든 정규-비정규직 구분… 노동시장 변화 제대로 반영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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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전국 3만2960개 사업장 근로자 85만여 명을 조사해 26일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지난해 6월 기준)에서 국내 정규직 임금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비율이 7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의와 기준을 개편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가 쓰는 기준이 15년 전에 만들어진 탓에 노동시장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고용부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1만2076원으로 정규직(1만8212원)의 66.3%에 그쳤다. 고용부 관계자는 “2015년(65.5%)보다는 0.8%포인트 개선됐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도 1만9147원으로 정규직(3만530원)의 62.7%에 불과했다. 다만 300인 이하 중소기업 비정규직(1만1424원)의 정규직(1만6076원) 대비 임금 비율은 71.1%로 대기업보다는 격차가 작았다. 특히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37.4%밖에 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에도 게시되는 이 조사는 비정규직을 특수고용, 재택(가내), 파견, 용역, 일일, 단시간, 기간제, 한시근로 등 8개로 분류하고 이 외의 형태는 정규직으로 집계한다. 문제는 이런 정의를 2002년 7월 만들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되자 당시 노사정위원회가 노사정 합의로 기준을 마련했다. 그동안 노동시장 환경이 달라지고 새로운 고용 형태가 등장했는데도 15년 전의 기준을 여태껏 쓰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 조사에서 무기계약직은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은 고용 형태라는 이유로 정규직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반 정규직보다 임금이 적기 때문에 따로 집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 통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스마트폰 배달애플리케이션 확산에 따라 등장한 배달대행 같은 이른바 ‘디지털 플랫폼 근로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택배기사처럼 일종의 특수고용이지만 특수고용에 포함되지 않고 자영업자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어정쩡한 신분이다. 이런 사각지대를 방치한 채 정규직 전환만 밀어붙이면 간접고용만 대폭 늘어나는 ‘풍선 효과’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좀 더 세밀한 기준을 세워 실태 파악부터 제대로 해야 정규직 전환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고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기준은 외형상 노무를 어떻게 제공하고 있는지만을 따지고 있어 근로조건의 구체적 차별과 고용안정 수준 등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4대 보험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은 산재보험 가입률만 97.4%일 뿐 나머지 보험은 56∼72%에 그치고 있다. 반면 정규직은 95%를 넘는다.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은 비용도 많이 들고 충격이 큰 만큼 일단 4대 보험 가입률을 높여 사회안전망을 두껍게 하는 게 먼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노동시장#비정규직 제로#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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