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택동]더 낮은 소통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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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정치부 차장
장택동 정치부 차장
지난 주말 경기 광명시에서 열린 라스코 동굴벽화전에 다녀왔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약 1만7000년 전, 실감조차 나지 않는 먼 옛날에 그린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소와 말, 사슴을 표현했다.

이 벽화를 그린 크로마뇽인의 모습도 상상 밖이었다. 철저한 고증 과정을 거쳐 만들었다는 크로마뇽인의 모형은 현대 서양인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닮았다.

현대인 못지않은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었고 겉모습도 꼭 닮은 크로마뇽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현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유발 하라리는 책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과 구분하면서 인류의 다른 종족은 사피엔스와의 경쟁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

무엇이 이들의 명멸(明滅)을 갈랐을까.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라며 이를 통해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소통을 통한 사회적 협력이 사피엔스의 생존 비결이자 본질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사피엔스의 이런 장점을 가장 잘 활용해야 하는 직종 중 하나가 정치인이다. 국민의 힘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에게는 소통 능력이 더욱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4·13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민의를 잘 반영해 각계각층과 협력과 소통을 잘 이뤄 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 이어 여야 3당 원내지도부를 만났고, 8일에는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을 하기로 하는 등 각계와 접촉을 넓히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불통(不通)’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가운데 ‘소통 부족’이 여전히 상위권에 올라 있다. 관저에서 홀로 보고서와 수첩을 보며 정책과 인사를 정할 것이라는 이미지,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여당 원내대표를 축출했던 ‘냉철한 승부사’의 모습 등이 국민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은 이야기가 통하는 분인데 진면목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정책이나 인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참모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여론에 충분히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해외 방문 시 박 대통령이 다음 날 회담 준비와 시차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이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다는 참모도 있다. 박 대통령은 철녀(鐵女)가 아니라는 취지다.

비서들의 말인 만큼 미화한 부분도 있겠지만 국민에게 박 대통령의 한쪽 모습만 부각돼 비치고 있다면 소통 방식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주요 정책 현장들을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 대부분 정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곳들이다.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들의 마무리를 위해 점검하고 독려하기 위한 행보이지만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기회로도 만들 수 있다.

한 예로 성공적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것보다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고 절박한 처지에 놓인 서민들을 찾아갔다면 어땠을까. 일·가정 양립 정책에 대한 메시지를 내면서 더 어려운 국민들과 눈을 맞추는 자리가 됐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6일 박 대통령이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과 만나고 직접 민원 상담까지 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더 낮게, 우리 바로 옆에서 호흡하는 박 대통령을 자주 보게 된다면 소통에 대한 국민의 갈증도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
#라스코 동굴벽화전#크로마뇽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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