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 별세…YS-DJ와 ‘40대 기수론’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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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2월 27일 12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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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향년 94세로 별세한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는 고(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40대 기수론'을 이끌었던 한국 야당사의 주요 인물이다. 호는 소석(素石)이다.

'40대 기수론'이란 젊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정치권 선두에서 민주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의 선두 주자가 되어 정치권에 우뚝 섰다. 이철승 전 총재는 당시 김대중·김영삼와 야당 대선후보 자리를 두고 겨뤘으며, 결과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출돼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다.

이철승 전 총재는 1922년 서울서 태어나 전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전북 전주에서 3대·4대·5대·8대·9대·10대·12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부의장과 헌정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1년부터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을 맡아왔다.

이철승 전 총재는 고려대 재학 당시 전국학생총연맹 위원장으로 반탁, 반공운동의 최일선에 섰으며, 이 때문에 한때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 출신 경찰을 채용하는 데 반대해 이 전 대통령을 떠났다.

정치권에 들어 이철승 전 총재는 1945년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해 단상에 있던 국회부의장의 멱살을 잡기도 했고,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 전 총재는 이른바 '40대 기수론'에 동참했던 한 사람으로서 유명하다.

이 전 총재는 1972년 유신 이후 반독재 투쟁을 주장했던 윤보선 전 대통령, 양김과 대립하면서 '중도통합론'을 강조해 박정희 정권에 협조하는 '사쿠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76년에는 신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가 집권했을 땐 정치활동 규제에 발이 묶여 11대 국회에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1985년 규제가 풀리면서 12대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당시 여당인 민정당 당론과 같은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 야권의 반발을 사며 논란이 됐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자유민주총연맹 총재,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 등을 맡아 정통보수파 인사로 활동했다.

이 전 총재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창희 여사와 아들 이동우 전 호남대 교수, 딸 이양희 유엔(UN)미얀마인권보호관, 사위 김택기 전 의원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내달 2일이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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