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기득권 타파’가 4·13총선 시대정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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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당신은 이 가운데 몇 가지에 해당되는가?

①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②가계부채가 있다 ③받은 세뱃돈이 10만 원을 넘겨본 적 없다 ④부모님이 정기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 ⑤부모님이 취미생활이 없다 ⑥부모님이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⑦냉동실에 비닐 안에 든 뭔가가 많다 ⑧중고나라 거래를 해본 적 있다 ⑨집에 비데가 없다 ⑩옷장 안에 유행이 지난 후 쟁여 두는 옷이 많다….
씁쓸한 흙수저 빙고게임

지난해 ‘금수저’ 논란이 불거지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흙수저 빙고게임’의 물음들이다. 원래는 가로 5개, 세로 5개씩 모두 25개의 질문에 자신이 해당되는 문항을 표시하고 빙고게임을 한다. 다소 과장된 질문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곤 없다는 흙수저들의 자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딘가 씁쓸하다. 그 자조 아래는 청춘의 좌절과 분노 같은 것이 깔려 있다.

비단 흙수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임원인 지인은 자식 둘을 모두 명문대에 합격시켜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그런데 큰아들이 지난해 취업에 실패했다.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였다. 지인은 “뭐 이런 나라가 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인문·사회계열 취업난은 명문대라고 비켜가지 않는 시대다. 오죽하면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에 이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13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9.2%. 관련 통계기준을 바꾼 1999년 이후 가장 높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아예 취업 의사가 없으면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돼 실업률 계산에서 빠지는 것까지 감안하면 체감 청년실업률은 20∼30%나 된다. 이젠 취업하려면 스펙 ‘3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점수)가 아니라 ‘9종 세트’(3종+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봉사활동, 성형수술)를 갖춰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스펙들이 실제 취업에 도움이 되느냐와는 별개로 이런 말이 나오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과거에는 많은 공직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병역 기피, 편법 증여, 위장 전입 등 ‘4대 종목’에 걸려 청문회 문턱에서 낙마했다. 최근에는 부모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한 ‘금수저 취업’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취직하지 못한 ‘3포 세대’와 그런 자식에게 해줄 거라곤 별로 없는 부모들의 좌절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젠 뭔가 바뀔 때가 됐다’는, 기득권에 대한 불만 수위가 차고 넘치기 직전이다.
현역의원 특권 심판해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의원들은 현역 기득권을 지키려 선거구 획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당원 명부조차 볼 수 없는 신인 예비후보들은 자신이 뛸 운동장이 어딘지도,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에 맞닥뜨렸다. 새누리당의 ‘험지 출마론’이라는 것도 결국 현역 의원 지역구는 놔둔 채 예비후보들을 야당 의원 지역구에 떨어뜨리는 것과 다름없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뜨는 것도 중도개혁을 표방하면서 새누리당은 ‘기득권 우파’, 더불어민주당은 ‘기득권 좌파’ 이미지를 씌우는 데 일단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선거는 이제 90일도 안 남았다.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어느 당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는 데 기여할 후보를 내놓는지를, 먼저 자신들의 기득권부터 내려놓는지를.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기득권타파#시대정신#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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