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충신이 없는 진짜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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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7월 24일 15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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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지도자는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서 나라의 모든 것들을 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적절하게 아래에 배치해 상황을 판단하고 지시를 내리고 하면서 국가를 운영합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정확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부하를 만난다는 것, 또 지도자가 틀린 지시를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부하를 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부하는 원래 통치자가 어떤 말을 들어야 기분 좋아할지 민감하고, 그런 말만 찾아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심지어 민주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 사례를 들어보면 김영삼 대통령 시기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닥쳐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정일을 싫어했는데, 그러니까 아래 사람들이 “북한이 얼마 안갑니다” 이런 보고를 위주로 했습니다.

그럼 대통령은 “아, 정보기관에서 이렇게 판단하니 정말인가보다”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 대북 정책이 북한이 붕괴될 경우 초래될 급변사태 방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죠.

반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니 이번엔 “북한이 오래 갑니다. 김정일은 대화가 통하는 상식적인 지도자입니다” 이런 보고 위주로 올라갑니다.

왜냐면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그런 보고를 해야 솔깃하지, 그 반대되는 보고를 하면 자리에서 오래 버틸 수 없죠.

이명박 대통령 때엔 또 국제적 압박을 하면 북한이 두 손을 들고 개혁 개방할 것이란 정보가 청와대로 향했죠.

정보란 것은 이렇게 해석될 수도,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어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듣기 좋은 쪽으로 늘 가공되기 마련입니다.

이건 옛날 왕조 시대도 마찬가지여서 덕이 있고 통치 잘한 왕은 자기에게 옳은 말을 할 줄 아는 신하를 중용했고, 역사에 안 좋게 평가되는 왕은 아첨꾼들만 주변에 득실거렸죠.

그런데,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을 두고 역사는 쓴 소리 잘한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바른 말도, 통치자에겐 쓰게 들린다는 말이죠.

그만큼 지도자가 객관적 입장에서 정확한 조언을 얻어듣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통치자는 바로 김정은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일성 김정일도 최악이긴 했지만, 적어도 자기 말에 토를 단다고 부하를 고사기관총으로 처형하진 않았죠.

이런 잔인한 독재자 밑에서 누가 감히 바른 소리를 하겠습니까. 누구나 “정말 하늘이 낸 뛰어난 천재입니다”라고 소리칠 준비만 돼 있지 “이게 사실이 아닙니다”고 절대 말을 못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까지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정말 최악에 최악입니다. 아까 사례든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과 같은 남쪽의 전직 대통령은 그래도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들입니다.

아첨꾼은 정확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 구별은 하죠. 하지만 사회와 격리돼 왕자로 살면서 밑에 아첨만 받으며 커오다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물려받은 어린 김정은에게 이런 능력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요즘 김정은이 시찰하는 것을 보면 가관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알고 저렇게 열심히 떠드는 걸까요.

그 밑에 있는 간부들은 물정 좀 알만 하건만 숨소리도 못 내고 부지런히 받아 적기만 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는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의미에서 적자생존이라 비유하기도 합니다.

김정은은 북한의 모든 전략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데, 정작 하는 행동은 관광객 같습니다.

어디에 무슨 건물을 완성했다, 또 어디서 뭘 만들어놓았다 하면 열심히 찾아가 아는 척 목청을 높입니다. 그게 어떤 분야든 상관없이 거침없습니다.

그게 엉터리 지시라고 해도 아래 사람들은 아니다 라고 말할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목이 날아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최대 피해자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북한 인민 여러분들입니다. 김일성 때부터 여러분들이 지켜보지 않았습니까.

가령 얼마 전에도 노동신문이 주체비료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것을 보고 저는 지금까지 그 주체 타령을 하다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아직도 저러고 있냐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김일성 때 주체섬유 한다고 순천비날론, 사리원카바이드에 100억 딸라 넘게 투자했다가 쪽박을 차고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때 우수한이란 과학자가 실험실에서만 성공한 카바이드 산소열법을 공장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김일성이 넘어간 것이죠.

그런데 그때도 그게 안 된다고 주장하던 과학자들이 많았지만 말을 못했습니다. 김일성이 된다고 하는데, 안된다고 반대하면 목이 무사하겠습니까.

그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지금 그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던 순천비날론공장은 거대한 파철더미가 돼서 뒹굽니다.

김정일 때도 주체철이니 주체섬유니 계속 떠들었지만 어떻게 됐습니까. 된 게 뭡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시도가 망하면 흔히 “간부들이 간신노릇을 해서 나라가 망한다”고 이야기는 합니다.

그런데 똑바로 아셔야 할 것이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간부가 간신이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일 문제는 통치자가 멍청해서입니다. 통치자라는 자리는 바로 간신을 가려내고, 정확한 판단을 만들어 결정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이게 이래서 어렵습니다”라고 하면 태도가 돼 있지 않다고 바로 총살해버리는 김정은과 같은 포악한 독재자 아래서 간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첨 딱 하나죠.

간신도 충신도 통치자가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러니 북한이 못사는 이유도 망하는 이유도 제일 큰 책임은 김정은에게 있습니다.

민주 제도라면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면 5년마다 선거로 바꾸면 되지만, 북한은 한번 올라가면 몇 십 년 나라를 엉뚱하게 끌고 가니 이거야 말로 정말 심각하지 않습니까.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http://blog.donga.com/nambuk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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