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대통령, 메르스 진압하고 방미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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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부서울청사에 설치된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를 방문해 “전문가들이 전권을 부여받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 의견을) 참고하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이 전권을 부여받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해 즉각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대통령의 발언은 메르스 관련 지휘계통에 보건전문가들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아 대응을 잘못하고 있다는 질책처럼 들린다.

최경환 총리대행, 황우여 사회부총리,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장인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에 보건전문가가 없다. 주무장관인 문 장관은 연금 전문가다. 박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비전문가인 지휘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대응지침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즉각 대응을 못했다는 판단을 이제야 한 것 같다. 이러니 “박근혜 정부 내각에서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친박(친박근혜) 좌장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입에서까지 나온 것이다. 정부가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과 장옥주 복지부 차관을 공동팀장으로 하는 즉각대응팀에 결정권을 부여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메르스는 어제만도 23명이 추가 확인돼 전체 환자 수가 87명으로 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메르스 2위 발병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14일부터 4박 6일 일정으로 시작하는 박 대통령의 방미(訪美)에 대해 연기론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메르스 사태가 2차 확산 차단에 실패해 지역사회 감염으로까지 번진다면, 가뜩이나 정부의 늑장 대응에 실망한 국민의 분노가 커질 우려도 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동맹과의 주요 외교 일정을 연기할 경우, 한국의 메르스가 통제 불능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줄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항공우주산업 기지인 휴스턴 방문을 취소하고 일정을 단축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겠지만, 하반기 양국 정상 일정과 내년 미국 대선 등을 감안할 때 한미 정상회담은 다시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출국하기 전에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메르스와의 전쟁 사령관’을 지명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에볼라 사태 초기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우왕좌왕했지만, 사태 발생 20여 일 만에 상황을 책임지고 조정할 전문가를 ‘에볼라 차르’로 지명해 과감히 권한을 부여한 데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보건소 및 지자체 공무원이 격리자를 1 대 1로 책임관리하고 미래창조과학부 경찰 등의 협조를 얻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기 위해서도 전문가를 포함해 범부처를 통할할 수 있는 총괄지휘 체제가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가 복지부의 격리병상 확보 요청을 거부하는 님비 현상과 일부 민간병원이 메르스 환자를 기피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도록 ‘메르스 사령관’이 확실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메르스#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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