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풀려도 용도제한’… 행정규칙 뒤의 그림자 규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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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내는 규제개혁]
목록에도 없는 족쇄들

서울에서 작은 뷔페식당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식당에서 5km 이내에 있는 빵집의 빵만 내놔야 한다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빵집에서 새벽에 빵을 배달시키면 신선한 빵을 더 싼값에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거리 규제 때문에 도심의 빵집에서 더 비싼 빵을 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20일 열린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지적된 ‘뷔페식당의 빵 규제’ 등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 중 상당수는 등록규제에 포함되지 않는 시행규칙이다. 이런 시행규칙들은 현실에 맞는 규제인지 검증되지 않은 채 장기간 기업들의 활동을 옥죄면서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조정실은 전체 등록규제 건수가 늘어나더라도 이번에는 숨어있는 행정규칙들을 모두 정식 규제로 등록해 관리할 방침이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떡집의 영업을 방해하는 규제도 포함하고 있다. 전통시장 등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떡집들이 인터넷을 통해 떡을 파는 것을 행정규칙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배달망이 없는 떡집들이 떡을 주문받아 팔 때 떡이 상할 수 있다는 논리로 판매를 막고 있다. 하지만 택배를 이용하면 신속하게 배달할 수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스타벅스 커피빈 등 유명 커피점과 세븐일레븐 CU 등 편의점을 동네에 새로 만들 때 기존 가게와 일정 거리 이상을 두도록 한 출점제한 조치도 정부 관리 대상 규제에서 빠져 있다.

해양수산부는 선원들에게 주는 최저임금을 해수부 장관 명의로 고시하고 있다. 일반 근로자의 최저임금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 달리 선원의 최저임금은 해수부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 이 역시 등록된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훈령인 도시·군 관리계획 수립 지침은 그린벨트 해제지역 가운데 이미 주거지가 형성돼 있는 곳이라도 저층주택만 지을 수 있도록 묶어두고 있다. 국민 재산권에 직접 영향을 주는 규제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방치되다 최근에서야 정부가 지침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행정규칙 외에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정부가 만든 모범규준 등도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례로 지방의 한 리조트 내 수영장은 성수기인 여름에도 물을 완전히 빼지 않는다. 뜰채로 수영장 표면의 부유물을 수시로 건져내고 소독약으로 정화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입장객들이 찜찜해할 정도로 물 색깔이 변해야 물을 뺀다. 지자체 조례가 수돗물 요금을 목욕탕용보다 1.4배 정도 비싼 영업용으로 분류하고 있어 물값을 아끼기 위해서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으로 불리는 모범규준은 형식상 업계가 자율적으로 따르게 한 권고지만 사실상의 지도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은 관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모범규준 형태로 내놓고 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실생활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는 규제는 상위법보다 행정규칙 등 법에 부속된 규정인 경우가 많다”며 “등록하지 않은 행정규칙의 효력을 정지시키면 규제 개혁의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홍수용 기자
#그린벨트#행정규칙#규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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