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지사가 12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 레이스의 막차를 탔다. 김 지사는 지난달 30일부터 공식 일정을 취소한 채 경선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이날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경선 룰이 바뀌지 않으면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은 데다 할지 말지 결정이 늦어진 탓에 캠프 내부에서조차 ‘실기(失期) 논란’을 빚어 향후 경선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김 지사는 이날 경선 참여를 선언하며 자신의 슬로건으로 ‘마음껏!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김동성 캠프 대변인은 “학생들은 마음껏 공부하고, 청년들은 마음껏 일하고, 노인들은 마음껏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약속 번복 논란을 의식한 듯 “새누리당은 오만의 낭떠러지, 이명박 정부는 부패의 낭떠러지, 서민은 민생의 낭떠러지, 젊은이들은 절망의 낭떠러지에 서 있다”며 “나부터 나뭇가지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전문가가 경선 참여의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했지만 새누리당의 승리를 위해 제 몸을 바치는 것이 바로 대도(大道)”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선 패배 시 승리 후보를 지원할 것이냐는 물음에 “혼과 몸을 바쳐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새누리 오만의 낭떠러지에 서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대선후보 경선 참여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두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실제 그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립각을 피했다. 김 지사는 “불통과 독선의 지도자가 아니라 봉사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면서도 ‘불통과 독선의 지도자가 박 전 위원장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경쟁 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안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 지사의 핵심 측근은 “앞으로 박 전 위원장과 경쟁하기보다는 반(反)자유주의, 반시장주의 세력과 일전을 벌인다는 게 우리의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 측은 경선 참여에 앞서 박 전 위원장을 어느 정도 수위로 공격할지를 놓고 고심했다. 박 전 위원장과 날카롭게 대립했다가는 자칫 ‘네거티브 선거로 당의 유력 주자를 흠집 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김 지사는 박 전 위원장과의 대립 구도 대신 자유주의와 시장주의 수호를 자신의 키워드로 내세운 것이다.
김 지사가 이날 여야 간 경제민주화 경쟁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선수인 대기업을 때리는 게 경제민주화라면 반대한다”며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고 좋은 일자리를 주는 대기업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소기업과 약자를 도와줄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자기 일은 안 하면서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사 주변에는 정치인보다는 학자가 많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과 정구현 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이진순 전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김 지사의 대표적 자문그룹이다.
반면 김 지사를 지지했던 김용태 의원과 신지호 전 의원 등은 캠프 참여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 지사 캠프 관계자는 “경선 참여에 반대한 그룹에서는 ‘김 지사가 명분 없이 시간만 끌면서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새누리당은 대선후보 경선 기호 추첨을 통해 △1번 임태희 △2번 박근혜 △3번 김태호 △4번 안상수 △5번 김문수 후보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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