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발굴된 6·25 국군유해 첫 봉환]“형님은 집 지키세요, 전 나라 지키겠습니다, 한마디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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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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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들 “꿈인지 생시인지…” 눈시울 붉혀

25일 봉환된 국군 전사자 유해 중에 신원이 확인된 이갑수 일병의 딸 숙자 씨, 아들 영찬 씨(왼쪽 사진)와 김용수 일병의 조카인 김해승 씨. 국방일보 제공
25일 봉환된 국군 전사자 유해 중에 신원이 확인된 이갑수 일병의 딸 숙자 씨, 아들 영찬 씨(왼쪽 사진)와 김용수 일병의 조카인 김해승 씨. 국방일보 제공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곤 거의 기대하지 않았는데….”

6·25전쟁 당시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해 북한 땅에 묻혔다가 25일 62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고 이갑수 일병의 아들 이영찬 씨(66)는 아버지의 귀환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네 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이 씨는 “너무 어릴 적이라 아버지라고 불러본 기억도 없어 아버지 이름도 몰랐고 그저 멀리서 전사하신 걸로 알고 지냈다”면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그때나 (아버지 유해를)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지냈는데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관련해서는 “조금 배우신 분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회사를 다니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이별한 딸 이숙자 씨(69)도 “키가 컸던 아버님은 비가 오면 내 발이 젖는다며 진흙탕 길에 나를 등에 업고 등교시켜 주셨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군인들과 함께 군용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가셨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는 “어릴 적에 아버님이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시고 귀여워해 주셨던 기억도 난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었던 아버님을 찾게 돼 꿈만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김용수 일병의 조카인 김해승 씨(54)는 작년에 작고한 아버지를 통해 전해 들은 작은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회상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 씨는 “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입대를 했는데 아버지가 후방으로 가자고 했더니 작은아버지는 ‘형님은 내려가 집을 지키세요. 전 나라를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미군과 함께 북으로 올라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후 작은아버지는 탱크부대에 있었는데 적 미그기의 폭격을 맞고 돌아가셨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신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육군 대령)은 “당시 관련 기록에 따르면 탱크부대는 아닌 것 같고,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이동 중에 아마 중공군의 박격포 공격을 받고 전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할머니께서 생전에 작은아버님이 형제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잘생긴 효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면서 가슴에 묻은 아들을 절절히 그리워하셨다”고 전했다. 또 “2년 전에 아버님이 ‘동생의 유해를 꼭 찾고 싶다’며 국방부에 유전자(DNA) 혈액표본을 제공했는데, 지난해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사실상 포기했었다”며 “그런데 국방부로부터 유해 봉환 소식을 듣고 기적 같은 일이어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일병의 가족들은 당시 전사통지서만 받았을 뿐 정확한 전사 날짜를 몰라 불교의식에 따라 매년 9월 9일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유족들은 북한 지역에 묻혀 있는 다른 국군 전사자 유해들도 하루빨리 수습돼 그리운 혈육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일병의 아들 이 씨는 “빨리 통일이 돼 다른 분들의 유해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며 “국방부로부터 아버지의 일부 유해가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6·25 국군유해#봉환#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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