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1일 여야 정치권에 국회의원 정수를 현재 299석에서 1석을 더해 300석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19대 국회에 한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선관위가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제안을 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내심 증원을 바라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던 정치권에 국회의원 정수를 늘릴 명분만 줬다는 얘기다. 울고 싶은 정당의 뺨을 선관위가 때려준 격이다.
이종우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날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등을 잇달아 만나 “세종시에 지역구를 별도로 두는 문제로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는 것이라면 19대 총선에 한해 국회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하자”고 건의했다.
공직선거법 21조는 ‘국회의 정수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합해 299명으로 한다’고 돼 있다. 이 규정은 그대로 둔 채 특례 조항을 마련해 ‘세종시 국회의원 1명’을 신설하자는 게 선관위의 제안이다.
선관위가 비판 여론을 뻔히 알면서도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고 한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선거구 획정 논의가 수개월째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공직선거법을 빨리 개정해 달라는 공문만 각 정당에 전달하려다 결국 ‘1석의 문제’라는 생각에 이날 원내대표들을 만나기 직전에 중재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경기 파주와 강원 원주를 분구하고 세종시를 신설해 지역구 의석을 모두 3석 늘리는 데 합의한 상태다. 문제는 국회의원 전체 정수와 비례대표 정수(현재 54석)를 손대지 않으려면 다른 지역구에서 3석을 없애야 한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영남에서 2석, 호남에서 1석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영남과 호남에서 동수로 줄이자고 맞서고 있다. 결국 여야가 1석을 두고 수개월째 힘겨루기를 하는 셈이다.
가장 속이 타는 건 선관위다. 이번 총선부터 도입된 재외국민선거의 사무 일정은 이미 어그러졌다. 국외부재자 신고인 명부의 작성 기준일은 이달 12일이었다. 22일부터는 지역구별 명부를 만들어야 하지만 지역구가 확정되지 않아 명부 작성이 힘든 상황이다. 명부 작성이 늦어지면 유권자가 이의를 신청하거나 명부를 수정할 시간이 없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관위가 국민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여야 정치권이 타협하기 쉬운 안을 제시한 것이다.
선관위의 제안에 당장은 여야 모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사실상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여야 협상 테이블에 선관위 중재안이 주요 대안으로 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영·호남에서 1석씩 줄이는 대신 민주당의 주장대로 비례대표 정수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이두아 원내대변인은 “국민들은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후보자 등록 신청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점을 고려할 때 선관위 중재안을 무조건 거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선관위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선거구 획정 문제는 여당이 책임지고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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