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중성… ‘한-EU FTA’ 모법은 합의 파기해놓고 SSM 등 부속법안은 내달 처리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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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어린이날 선물을 제대로 내놓았다. 약속은 깨라고 있다는 걸 어린이들에게 일찌감치 알려준 것 아니냐.”

4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한나라당 관계자가 냉소적으로 한 말이다. 이날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은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국회 안팎에서 제기됐다. ‘전격 합의’가 단 이틀 만에 ‘전격 파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정부는 마라톤협상 끝에 3개나 되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집안싸움’에 48시간도 안 돼 합의문은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돼 버렸다.

합의문에 서명했던 민주당 소속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은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뒤 “오늘 민주당은 아무런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 야권연대라는 명분에 얽매여 (FTA 후속대책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함으로써) 600만 소상공인, 320만 농민이 고스란히 더 큰 생계 위협에 노출되게 됐다”고 탄식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나와 민주당은 이들의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죄송할 뿐이다”라고 논평했다.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파기한 민주당 안에서 나온 거의 유일한 자기반성이었다.

신익희 선생 55주기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해공 신익희 선생 55주기 추도식에서 박희태 국회의장이 헌화하고 있다. 해공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광복 후에는 국회의장을 지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신익희 선생 55주기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해공 신익희 선생 55주기 추도식에서 박희태 국회의장이 헌화하고 있다. 해공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광복 후에는 국회의장을 지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5일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게 내 책임”이라며 “여야정 간에 어렵사리 합의한 대기업슈퍼마켓(SSM) 규제법과 농어업인 지원특별법을 한나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약 한나라당도 이들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당초 약속을 뒤집는다면 민주당은 뭐라 비판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약속 파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박 원내대표 직전 민주당 원내사령탑을 맡았던 이강래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해 2월 26일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의 공관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선상부재자투표제’(선원들이 선박에 설치된 팩스로 투표하는 제도)를 그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선상투표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끝내 열리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선상투표제를 처리하려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상시적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시키자”며 새로운 요구 조건을 들고 나와 회의가 무산된 것이다.

17대 국회에서 6개 정당 원내대표들은 2007년 4월 11일 ‘개헌 문제는 18대 국회 초반에 처리한다’는 합의문에 줄줄이 서명했다. 이 합의문 역시 휴지조각 신세가 된 지 오래다.

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해공 신익희 선생 55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해공 선생의 ‘단성보국(丹誠報國·일편단심으로 나라에 충성)’ 정신을 이어받아 의회민주주의 발전에 매진하자”고 말했다.

제헌의회와 2대 국회의장을 지낸 해공 선생은 국회를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의회주의자였다. 그는 현 민주당의 뿌리이기도 하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5일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과 합의 존중 원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오늘의 국회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모셔져 있는 해공 선생의 흉상을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마디를 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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