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오타 207건… 한-EU FTA ‘오류 협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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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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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 현지법인, 이식 → 수혈, 광택재 → 고아택재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한글본 번역에 대한 재검독 결과를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한글본 번역에 대한 재검독 결과를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외교통상부가 4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한국어 번역본을 재검독한 결과 총 207건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최종 발표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현재 재검독 중인 한미 FTA 협정문에서 오류가 또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FTA 협정문 번역 오류를 둘러싼 진통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지난달 10일부터 30일까지 한-EU FTA 한국어본을 재검독한 결과 서비스 양허표에서 111건, 품목별 원산지 규정에서 64건, 협정문 본문에서 32건 등 총 207건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오류는 △잘못된 번역 △잘못된 맞춤법 △번역 누락 △불필요한 첨가 △고유명사 표기 오류 등 5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잘못된 번역은 128건으로 가장 많았다. ‘생전행위(inter vivos act)’를 ‘증여법’으로, ‘이식(transplant)’을 ‘수혈’로 번역했다. 의미상 번역해야 하는 단어를 누락한 경우가 47건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지적한 것처럼 부정문에서 ‘any(어떤)’를 번역하지 않아 의미가 달라진 경우 등 7건도 확인됐다. 오타로 인한 맞춤법 실수도 16건, 고유명사 표기 오류도 4건이 나왔다.

외교부는 발견된 207건의 오류가 협정문의 ‘개정’이 필요한 정도의 중대한 것은 아닌 만큼 착오를 바로잡는 ‘정정’을 EU 측과 외교 공한(公翰) 형태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 제79조에 따르면 정정 행위를 거친 협정문은 흠결본을 처음부터 대체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에 따라 오류가 있었던 처음 번역본은 아예 효력이 사라진다.

김 본부장은 또 당초 예고와 달리 이날 기자회견에서 번역 오류와 관련한 실무자 문책은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감사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관계자 문책을 단행하겠다고만 밝혔다.

김 본부장은 7월 1일 한-EU FTA가 잠정발효돼야 한다는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현재 EU와 7월 1일 잠정발효를 약속한 것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는 민변의 감사청구에 따라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는 김 본부장은 “발효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 맞다”면서도 “많은 국민이 한-EU FTA의 조속한 발효를 바라고 있는 만큼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이를 고려한다면 7월 1일 발효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4월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처리돼야 6월까지 관련 국내법을 개정해 7월 1일 잠정발효를 할 수 있다는 게 외교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정부의 FTA 졸속 처리를 비판하며 4월 국회 중 처리가 어렵다는 내부 방침을 이미 정한 상태다. 한나라당 역시 200곳이 넘는 번역 오류가 나온 만큼 야당을 설득할 명분이 다소 약해졌다는 입장이다. 현재 재검독이 진행 중인 한미 FTA에서도 번역 오류가 나올 경우 문제는 더 꼬일 수 있다.

다만 외교부가 당초 민변이 제시한 160곳에서 더 나아간 207곳의 오류를 직접 찾아낸 것은 번역 오류 비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만큼 외교부의 국회 설득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과 북아프리카 중동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서도 EU 수출길이 조속히 열려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국회를 집중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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