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전 평양의 동독대사관은 김정일 세습을 반신반의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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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서 동독 문서보관소 당시 문건 4건 입수

현대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3대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북한에서는 36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의 권력 세습이 그것.

당시 평양에 주재하고 있던 옛 동독 대사관은 가장 가까이서 본 북한의 권력승계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러 차례 외교전문을 보냈다. 동아일보가 미국 워싱턴의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를 통해 입수한 4건의 동독 문서보관소의 문건을 보면 “북한의 권력승계는 매우 불투명하고 고도로 미묘한 모습을 띠고 있다”고 소개했다.

1974년 11월 문건은 이제 막 북한에서 시작된 김정일 후계자 추대 움직임을 묘사하면서도 과연 북한이 세습을 할 것인지를 반신반의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문건은 북한 당국자들과의 대화를 인용해 “당 대회가 북한에서 열렸고 김일성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첫째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은 1974년 2월 제5기 8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을 중앙위 정치위원으로 지명하면서 후계체계를 본격화했다.

문건은 이어 “김일성의 장남(김정일을 지칭)의 대형 초상화가 처음으로 평양시내와 관공서에 걸리기 시작했고 조국의 통일과 사회주의 국가건설과 관련해 김정일이 주창한 선전문구가 다수 전시되고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1975년 4월의 문건에서는 당 조직 및 선전·선동 담당 비서가 된 김정일이 주창한 것으로 알려진 3대 혁명소조 운동이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문건은 “처음으로 김일성 가계의 연대기가 소개되고 있으며 김일성의 부인과 첫째아들을 소개하는 대형 초상화가 걸리고 있다”며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등장하는 대형 그림이 나왔다”고 적었다.

같은 해 12월 문건은 “현재 북한 전체는 이른바 ‘3대 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을 완수하는 데 정신이 팔린 모습”이라며 “‘당 중앙’이 이 운동을 주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당 중앙’은 김정일을 지칭한다. 최근 타계한 황장엽 선생은 “김정일이 당 중앙으로 추대되면서 북한에서는 사실상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이 탄생한 것”으로 평가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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