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새 패러다임 ‘세대교체’]<3·끝>지역감정도 ‘교체’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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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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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이 말하는 “나는 이래서 반기 들었다”
“출신지-한풀이는 우리 관심 밖”… 텃밭에 견제가 싹튼다

무소속 도지사 낸 경남
“변한것 없이 여당은 독선…다음에도 당보다 인물 볼것”

한나라당 선전한 광주
“민주당오만에 경고 준것…與 찍는다고 문제 안삼아”

변화 보여준 강원-전북
전북지사 한나라 표 20% 육박…‘보수 강원’ 민주에 지사 내줘

“출신지역은 관심 밖이에요.”

경남 창원시의 대학 2학년생인 강모 씨(23)는 6·2지방선거 때 부재자투표를 통해 무소속 김두관 후보를 찍었다. 강 씨는 “집안 어른들이 ‘그래도 한나라당 후보를 찍어줘야지’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기는 했지만 우리 또래에겐 누가 더 취업 문제 해결이나 지역발전을 잘 해낼지, 더 청렴할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세대교체와 더불어 6·2지방선거가 한국정치사에 남긴 족적(足跡) 가운데 하나가 지역감정의 쇠퇴 조짐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에서 민주당 또는 민주당과 가까운 무소속 후보가 승리를 거머쥐었고 민주당의 철옹성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눈부신 성적’을 남겼다.

물론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해서 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 수는 없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국정치를 옭아매왔던 지역감정의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고 있는 건 분명하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동아일보는 경남에서 무소속 김두관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6명, 광주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5명, 그리고 전북과 강원에서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를 택한 유권자들을 인터뷰해 속마음을 들어봤다. 일부 유권자는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소개한다.

○ 무소속을 향한 경남의 표심

김두관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다음 총선, 대선에서도 (정당이 아니라) 후보를 보고 투표할 것이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밝혔다.

식당업을 하는 경남 사천시 정모 씨(36·여)는 “한나라당도, 현 정부의 독선도 싫었다”며 “그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했지만 지역이 발전하거나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통영시 광도면 김마성 씨(38·농업)는 김 후보 지지 이유를 ‘한나라당 견제’라고 말하면서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견제 심리가 장년층까지 확산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간의 지역주의 투표 원인에 대해선 “기존 정당들이 그것을 이용했고 언론에서 부추긴 면도 있다”고 했다.

대기업 직원 송현경 씨(39·마산시 내서읍)는 “호남(민주당)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무조건적인 측면이 있다”며 “지역주의가 완화된 것은 젊은층 투표 참여와 한나라당 정책 부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지지로 영남지역은 일정 부분 혜택을 봤지만 이명박 정부의 핵심정책이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선거에서 고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인 박희복 씨(24·창원시)는 “젊은층의 관심 증가가 지역주의를 누그러뜨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진주시에 사는 대학생 장병걸 씨(24)는 “무소속은 도민 처지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 김 후보를 찍었다”며 “한나라당은 주민 의견보다는 당 지시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 광주에서 피어난 변화의 새싹

광주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정용화 후보(45)는 14.2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 후보를 찍은 20∼50대 유권자 3명은 “오만에 빠진 민주당에 경고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권자는 “특정 정당 몰표 현상이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한 명은 정 후보의 젊음과 학력, 경력 등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변에 한나라당 지지를 권유하기도 했는데 특별히 따지거나 문제를 삼는 반응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 지역발전이나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긍정적 효과를 내거나 과거 민주당 집권기에 순기능을 발휘했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달라진 것 없이 결국 자기들끼리 다 해 먹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들은 다음 총선 또는 대선에서도 ‘비(非)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지만 총선의 경우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 표심의 변화 보여준 강원, 전북

전북지사 선거에서 정운천 후보는 한나라당 소속으로는 사상 최다인 18.2%를 얻었다. 의사 김모 씨(46·전주시)는 “호남에서 한나라당은 ‘전두환 민정당’의 후예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며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통해 어느 정도 ‘한풀이’를 했고 지역화합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좋은 후보를 낸다면 지지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원 고모 씨(28·군산시)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준 건 처음인데 당보다는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였다”고 말했다. 고 씨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고 한나라당 후보의 인생관에 공감했다”며 “앞으로도 정당보다는 후보를 보고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보수의 텃밭’으로 인식됐던 강원의 경우 2006년 선거에서는 도지사를 비롯해 18개 기초단체장 모두를 한나라당이 석권했으나 이번엔 민주당 이광재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됐으며 기초단체장 가운데 여덟 곳을 민주당과 무소속 후보가 차지했다. 춘천시에 사는 한모 씨(42·자영업)는 “그동안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가 지역 발전이나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태백시의 박모 씨(35·회사원)는 “젊은층은 정당에 얽매이지 않고 인물을 판단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화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 與호남서 광역 두자릿수 득표 서진 vs 동진 민주 ‘盧風’ 앞세워 영남서 약진 ▼

영호남 벽허물기 노력 결실
호남향우회는 경기서 “중립”


6·2지방선거를 거치며 영호남지역의 두꺼운 벽을 허무는 ‘단초’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야가 서로 열세지역의 문을 계속 두드린 결과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호남지역에선 한나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두 자릿수의 득표율을 올렸다. 모두 한 자릿수에서 맴돌았던 2006년에 비하면 약진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2004년 박근혜 대표 시절부터 호남지역에 공을 들여온 ‘서진(西進)정책’이 결실을 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강인호 조선대 교수(행정학과)는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두 자릿수 득표를 한 것은 민주당의 잠재적인 대안세력으로 인정될 가능성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남에선 한나라당 지지층의 이완 현상이 나타났다. 대구·경북보다 부산·경남권에서 두드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친노무현 성향의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가 당선됐고 민주당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의 득표율이 44.6%를 기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야권의 동진(東進)정책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은 “후보만 좋으면 부산·경남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기초 및 광역단체장도 얼마든지 가능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영남권이 하나라는 의미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는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한나라당은 호남권에 더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민주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했던 경기지역 호남향우회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중립을 지켰다. 수원시호남향우회연합회 이용훈 회장은 21일 “과거와 달리 능력이 있으면 한나라당 후보라도 지지하겠다고 밝히는 향우가 늘고 있다. 민주당 후보라고 해서 지지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학계가 그려본 ‘차세대 리더십’▼
지역 행정-정치가 〉 중앙의 스타
화합-감성형 〉 실적 위주 CEO

정치학자들은 6·2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 색이 옅어진 현상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전통적 지지층에만 기대는 정당은 미래가 밝지 못할 것으로 봤다. 따라서 새로운 세대의 정치 지도자들은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통해 지지층을 발굴하고 결집하는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교양학부)는 이번 지방선거를 ‘일방적인 중앙정치시대가 막을 내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중앙에서 유명한 사람을 공천하면 지방에서 당만 보고 찍었으나 이번 선거는 아니었다”며 “이제 어느 당의 공천을 받았느냐보다 지역민의 지지를 얼마나 받고 있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인재를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이제 유명세보다 지역에서 행정·정치가로서의 역량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김용철 교수(행정학과)는 ‘변화를 추구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보스 정치인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기초한 수직적 리더십이 통용됐다면 앞으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번 선거는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며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수정안 추진 등에서 국민통합을 이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성과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이명박 리더십에 국민이 답답해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CEO형 리더십은 차갑고 기계적인 면이 있었다. ‘감성 리더십’으로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통합형 지도자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남궁곤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색이 사라지는 경향을 보였을지 모르지만 이념 갈등은 오히려 부각했다”며 “차후의 리더십은 우리 사회를 분열에서 구출할 수 있는 화합과 탈이념이 될 것이며 그런 자질을 보여주는 정치 지도자들이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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