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정열]“제사상 왜 따로 차리나” 혼쭐난 시민분향소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19일 오후 6시 10분경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식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한쪽 구석에 위치한 이른바 ‘시민 임시 분향소’ 앞에서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시민 임시 분향소는 정부가 만든 공식 분향소에서 고인을 추도할 수는 없다며 18일 밤 자칭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광장 한쪽 구석에 만든 것.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촛대, 수박 등의 음식을 차려놓은 작은 책상 하나가 전부인 이 시민 분향소를 관리하는 ‘평범한 시민’들 속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만들어졌던 천막 분향소에서 본 얼굴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광장을 찾은 일부 시민이 시민 분향소의 철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고성이 오가는 시비가 벌어졌다. 시민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고 나선 이들은 경찰도 보수단체 회원들도 아니었다. 이들은 고인을 추모하려고 서울광장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를 찾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60, 70대가 대부분으로 지난 수십 년간 김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들의 가슴에는 ‘근조’라고 적힌 검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들은 “번듯한 분향소가 차려졌는데도 임시 분향소를 계속 두는 이유가 무엇이냐. 초상집은 하나인데 제사상이 두 개인 모양새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시민 분향소 철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민 분향소 관계자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분향소가 하나 더 있는 것이 무슨 큰 문제냐”며 반발했다. 양측 사이에서는 고성과 막말이 오갔고 일부 인사들은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등 서울광장에서는 한 시간 넘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결국 19일 밤 ‘평범한 시민’들이 시민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고 나서야 서울광장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초상집에서 벌어진 상주들끼리의 다툼이나 다름없는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난 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한 70대 노인의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덕수궁 대한문 앞 천막 분향소를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서울광장이 닫혔다고 시민 분향소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엔 광장도 열리고 분향소도 크게 세워졌는데도 무엇 때문에 저 옹색한 분향소를 계속 둬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지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어요.”

우정열 사회부 passi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