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우혜]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빛과 그림자

  • 입력 2009년 5월 23일 22시 11분


세상에 ‘흠 없는 존재’로서 당당하고 싶었던 그의 염원

우리 모두 고뇌하고 성찰해 더 나은 삶과 사회 만들어야

주말 아침에 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소식을 들으면서 먼저 뇌리에 떠오른 내용은 성서에 나오는 저 아픔으로 가득한 시편의 한 구절,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깊은 탄식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동이 트는 첫새벽에 한 걸음 한 걸음 산으로 걸어 올라간 마음을 어찌 제대로 헤아릴 수 있으랴! 그 캄캄한 절망감과 슬픔을 어찌 제대로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세기의 풍운아처럼 한 시대를 휩쓸었던 노 전 대통령은 아프게 갔다. 그런 죽음을 통해 우리가 새삼 선명하게 알게 된 점이 하나 있다. 그가 얼마나 강렬하게 세상을 향해서 ‘흠이 없는 존재’이고 싶었던 사람인가 하는.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고 싶은 마음, 누구 앞에서나 떳떳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남보다 훨씬 더 컸던 분이기에 그렇지 못한 상태를 견디기가 남보다 더욱 심하게 어려웠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오는 압박감과 절망이 얼마나 컸으면 그처럼 고통스러운 마지막 선택을 했을까. 전직 대통령 중에는 노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혐의를 받고 공식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으면서도 태연하게 견딘 분이 있음을 생각할 때 노 전 대통령의 비통한 죽음이 주는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의 뚜껑을 덮고 난 뒤에야 제대로 내려진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의 아픈 죽음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그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크게 고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두뇌와 노력만으로 그것도 고학을 통해서 판사 및 변호사가 됨으로써 사회의 상층부로 뛰어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입지전적인 출세로 인해 그의 존재는 일찍이 우리 사회가 담보하는 건강한 희망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의 하나가 됐다. 인권변호사, 국회 청문회를 활기차게 이끄는 스타 국회의원, 한국 정계의 암적 존재인 지역 구도를 깨부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하는 정치인…. 그의 행보는 당대의 정치상황과 맞물려서 그만이 차지하고 누릴 수 있는 위상과 가치를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아주 뚜렷하게 새겼다.

그리고 대통령이 됐다.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대통령 직이란 태양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리이다. 거기 앉는 분은 그 높은 사회적 고도로 인해 그가 지닌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난다. 빛나는 장점도 허술한 단점도, 자랑스러운 희망도 어두운 절망도, 힘 있는 겸허함도 치졸한 허세도 모두 하나하나 세상 사람의 눈에 뚜렷하게 보인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그처럼 드높은 고도를 두려워하여 적당히 자신을 감추고 지키려는 노력을 한 분이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느낀 대로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그의 남다른 소신과 처신은 한국의 대통령상에서 보기 드문 새로운 전범을 만들었다.

그가 우리 사회에 드리웠던 빛과 그림자는 지금도 우리 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의 비통한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우리 사회 자체를 사려 깊게 돌아보고 고통스럽게 성찰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올라서 우리 앞에 놓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삶을 마감한 데 대해 매우 비관적인 또는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태도를 뛰어넘어서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와 교훈에 대해 거듭 성찰하고 고뇌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할 때만 그의 고통스러운 절망조차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은 형태를 향해서 나아가는 발전을 이루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그의 죽음 그 자체만을 들여다보는 눈길을 들어올려야 한다.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의 깊은 절망과 슬픔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을 ‘흠이 없는 존재’로서 세상에 당당하게 서 있도록 만들고 싶었던 그의 크나큰 염원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바로 그런 염원이야말로 우리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 하나하나에게 너무도 부족하고 너무도 결핍된 점이다. 우리 중에 누가 우리 자신이 ‘흠이 없는 존재’가 아닌 사실에 대해 아프게 성찰하고 고뇌하면서 사는가.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그런 현실에 대해 슬퍼하고 괴로워하기는커녕 ‘흠이 없는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의 의미조차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때가 많다. 때로는 간혹 그런 점에 대해 생각해도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아프고 괴롭게 느끼지조차 않으며 살아간다. 노 전 대통령은 바로 그 점을 갖고 있었다. 넘치도록 지니고 있었다. 자신이 ‘흠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할 만큼 막중한 무게와 무서운 진지함을 지니고 그것을 생각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우리에게 깨우쳐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깊이 부끄러워하고 크게 슬퍼해야 되리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흠이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염원을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또 그런 염원의 결핍이나 부족함을 아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아프게 반성하고 절실하게 뉘우쳐야 하리라. 그것만이 우리 자신을 더욱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 우리 사회를 좀 더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드는 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송우혜 소설가


▲동아닷컴 뉴스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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