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KAL기 폭파는 北의 테러… 나는 가짜 아니다”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 씨(47·오른쪽)가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32)를 만나 인사를 나누며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보이고 있다. 다구치 씨는 1978년 납치된 뒤 북한에서 김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김 씨는 1997년 5월 공안검사를 대상으로 강연을 한 이후 12년 만에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부산=최재호 기자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범인 김현희 씨(47·오른쪽)가 11일 부산 벡스코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32)를 만나 인사를 나누며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보이고 있다. 다구치 씨는 1978년 납치된 뒤 북한에서 김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김 씨는 1997년 5월 공안검사를 대상으로 강연을 한 이후 12년 만에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부산=최재호 기자
金씨 다구치 가족에 90도 인사후 눈물 왈칵

다구치 애창곡 담긴 CD-손수건 등 선물받아

다구치 아들 “어머니 생존 확실한 증언 있어”

“金씨 ‘당신의 따뜻한 엄마 돼주겠다’고 말해”

■ 만남 표정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북한명 이은혜) 씨의 가족과 김현희 씨가 마침내 상봉했다. 김 씨는 11일 북한에서 일본어를 배우며 친자매같이 지낸 다구치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 씨의 손을 공개면담 내내 꼭 잡았다.

또 고이치로 씨는 비공개 만남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현희 씨가 ‘따뜻한 엄마가 돼 주겠다’고 말해 기뻤다”고 말했다. 비록 90분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1일 오전 11시 부산 벡스코 공동회견장. 시선은 김 씨에게 주로 쏠렸다. 김 씨는 카메라 플래시 수십 개가 일제히 터지자 당혹스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 씨는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다구치 씨 가족에게 90도로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다구치 씨의 오빠인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 씨의 양손을 덥석 잡으며 유창한 일본말로 안부를 물었다.

이어 고이치로 씨를 향할 때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김 씨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을 만난 것처럼 와락 끌어안았다. 이후에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낼 때를 제외하고는 공개면담이 이뤄진 3분 40초 내내 고이치로 씨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도 김 씨는 “고이치로 씨는 잘생겼고 어머니 모습을 많이 닮았다”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특히 고이치로 씨는 이 자리에서 “어머니가 확실히 생존해 있다는 증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은 준비해온 선물을 주고받았다. 김 씨가 받은 선물은 1970년대 일본 유행가가 수록된 CD 2장과 치즈케이크, 손수건 등으로 모두 다구치 씨와 인연이 있는 물건이다. 특히 CD 중 한 장은 다구치 씨가 외로울 때마다 창밖을 보며 즐겨 불렀다던 ‘세토의 신부(瀨戶の花嫁)’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구치 씨 가족은 △도쿄와 오키나와 여행안내 책자 △고이치로 씨가 감수한 만화 ‘어머니가 납치됐을 때 나는 한 살이었다’ △시게오 씨가 쓴 책 ‘여동생에게’ △가족사진 9장 등도 전달했다.

이날 경찰과 보안당국은 혹시 있을지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벡스코에 3중 경비망을 설치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벡스코 주변엔 사복을 입은 경찰기동대 1개 중대 100여 명이 근접거리에 배치됐고, 전·의경 70∼80명은 외곽 경비를 맡았다. 벡스코 회견장과 그 주변에서는 국내외 기자 300여 명이 열띤 취재를 벌였다.

부산=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