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인터넷 유머는 왜 안 먹힐까

  • 입력 2009년 2월 24일 15시 24분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 집권 1주년을 맞아_경제도 김연아처럼_이란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다 누리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 집권 1주년을 맞아_경제도 김연아처럼_이란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다 누리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얼굴을 손담비 몸통에 합성한 조악한 패러디로 누리꾼들의 조롱을 받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얼굴을 손담비 몸통에 합성한 조악한 패러디로 누리꾼들의 조롱을 받았다.
한나라당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 꽃보다 경제 패러디물.
한나라당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 꽃보다 경제 패러디물.
"진짜 한나라당이 만든 건가요? 혹시 내부 안티의 작품 아닌가요?"

한나라당이 20일 정당 홈페이지(www.hannara.or.kr)에 게재한 패러디 사진 '꽃보다 경제-한나라반 H4'를 둘러싸고 한동안 소동이 일었다.

'꽃보다 경제-한나라반 H4'는 인기 절정의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빗대어 최근 신설된 특위 위원장 5명(정몽준 허태열 공성진 안경빈 박순자)의 활동 사실을 홍보한 패러디 사진.

이 사진이 누리꾼들에게 알려진 것은 3일이 지난 월요일 오전 무렵이다. 처음엔 '서민들과 괴리된' 한나라당을 비꼬려는 의도로 제작된 패러디 사진이라고 짐작한 누리꾼들은 이 작품(?)이 한나라당 자체 작품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를 직접 확인하려는 누리꾼들의 방문으로 한나라당 홈페이지는 한 동안 몸살을 앓았다.

사실을 확인한 누리꾼들은 "웃자는 패러디가 아니라 스스로를 깎아 내리는 자살골에 가깝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일각에선 "열심히 한다"는 평가도 없진 않았지만 "패러디가 자신에게 유리한 지 불리한 지 분간도 못하느냐"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 것.

특히 누리꾼들은 실제 재벌인 정몽준 의원을 신화그룹의 후계자인 F4의 구준표에 빗대 '구몽표'라고 소개한 대목을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 구준표는 서민들을 비하하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 한나라당 H4는 Horrible4?

'한나라당 H4'뿐 아니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게재된 전작 패러디들도 덩달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일 전국 광역 기초의원 결의대회에서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고 말한 박희태 대표를 '미쳤어!'를 부른 인기가수 손담비의 이미지에 합성한 사진이 대표적이다.

이달 초에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해 '경제도 김연아처럼…'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가 "김연아의 허락은 받았나?"하는 비아냥을 샀다.

김성훈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이 15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민주당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는데 순식간에 무려 6000개의 댓글이 따라붙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댓글들은 대부분 김 위원장의 '무개념'을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한나라당의 온라인 홍보 전략은 번번이 누리꾼들의 빈축을 샀다. 한나라당은 2002년 온라인 민심에 뒤져 선거에 패한 뒤 절치부심 끝에 2007년 정권을 되찾아오는 데는 성공했다. 특히 2007년 온라인 선거전에서는 상대방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온라인에서의 누리꾼들과의 소통은 미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연한 분란을 일으킨다는 평이 많다.

어째서 한나라당의 인터넷 농담은 찬탄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 것일까?

대중문화평론가인 조희제씨(39)는 "패러디의 핵심은 권력과 가진 자에 대한 비꼼인데 거꾸로 권력 스스로 패러디 소재가 되겠다고 자처한 꼴이니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뜬금없는 '김연아 슬로건'이나 'H4 패러디'야 말로 한나라당의 잘못된 온라인 접근법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패러디 소재로 '판타지 드라마'를 삼은 것도 적절치 못했다.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컨텐츠라고 해서 무조건 차용한 것 같은데 자신의 정체성이 없는 문화적 접근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포털사이트의 K모 과장 또한 "온라인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오류가 속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마디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시도만 보이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온라인 문화가 없다는 얘기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갖추려는 노력 없이 인기 콘텐츠를 단순히 이용만 하는 방식으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대중인기에 편승하지 말고 독자적 정체성 확립해야"

물론 이 같은 한나라당의 시도를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정당 홈페이지의 컨텐츠 질과 운영수준, 그 밖에도 의원들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정도는 다른 정당에 비해 월등하게 앞서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반론이다.

한나라당 유은종 디지털팀장은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온라인에서는 의심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다"면서 "노력에 비해 누리꾼들의 이해의 폭이 부족하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는 "젊은 누리꾼들 상당수가 반(反) 한나라당 성향이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한나라당의 이미지가 왜곡된 모습으로 전달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온라인 소통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국민소통위원회 보고대회에서도 한나라당의 어색한 온라인 소통을 질책하는 의견이 쏟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몇몇 위원들은 "소통위원들의 활동이 여타 누리꾼들에게는 '알바'(댓글을 달기 위해 고용된 사람)의 행동으로 비쳐지는 수준"이라면서 "당이 자세를 더욱 낮추고 마음을 열어야만 온라인에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한나라당 출입기자인 L모씨는 "내부적인 소통 구조 확립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실제 한나라당 'H4'패러디는 당사자인 정몽준 의원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열린 구조였다면 이 같은 패러디가 자체 검증 없이 한나라당 메인 홈페이지를 장식 할 수 있었겠냐는 지적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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