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노무현과 이명박 닮은 꼴”

  • 입력 2009년 1월 5일 17시 26분


'보수 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가 최근 국회 파행과 관련, "다수결은 만능이 아니다"면서 쟁점법안의 일괄 처리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다수결과 법치주의'라는 글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 사학법 개정에는 '친노 직계'라 불리던 의원들이 앞장섰는데, 이번 쟁점법안 통과에는 'MB 직계'라고 불리는 의원들이 앞장섰다면서 "닮은꼴도 이런 닮은꼴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법률가 출신 의원들이 "국회는 다수결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다수결이 그렇게 중요한 원칙이라면 (노무현 정권 시절) 사학법 개정 반대 장외투쟁은 왜 했다는 말인가"하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초이고, 다수결로 채택된 법률이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을 흔히 '법치주의'라고 부른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반 정도만 맞는 말이며 만일 다수결이 그렇게 만능이라면 성문(成文)헌법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 헌법은 단순 다수결이 위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수결을 견제하는 장치를 많이 심어 놓았다. 대통령은 국회가 다수결로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할 수 있으며,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효로 판결될 수 있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선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한 것 역시 마찬가지의 취지에서다.

이 교수는 미국 상원의 구조와 의사 결정 과정을 소개한 뒤 "별다른 토론도 여론 청취도 없이 법률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가 민의(民意)를 수렴하라고 만들어 놓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또 "민주당의 국회의사당 점거는 물론 잘못된 처사이지만 과연 집권여당이 쟁점법안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 쟁점 법안은 내용의 당(當)·부당(不當)을 떠나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뒤 "입법은 토목공사가 아니며, 국정은 건설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뉴스팀

다음은 이 교수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

<다수결과 법치주의>

쟁점법안 처리과 이에 반대한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농성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 '다수결'과 '법치주의'라는 말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수결'은 만능(萬能)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代議)민주주의이고, 국회는 바로 대의민주주의를 반영하는 기관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한때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선거에서 다수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듯이, 국회도 궁극적으로는 다수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모든 법률은 국회의 다수결로 제정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초이고, 다수결로 채택된 법률이 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을 흔히 '법치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반(半) 정도만 맞는 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헌법에 기초하고 있는데, 만일 다수결이 그렇게 만능이라면 성문(成文)헌법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우리 헌법은 다수결을 견제하는 장치를 많이 심어 놓았다. 대통령은 국회가 다수결로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할 수 있으며,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효로 판결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을 위헌(違憲)으로 판결하는 경우에는 전체 재판판의 2/3가 찬성하도록 해서 소수 재판관이 위헌판결을 막을 수 있게 했으니, 이 또한 단순 다수결에 대한 불신(不信)이 표현된 것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선 2/3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한 것 역시 단순 다수결이 위험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에선 인구와 관계없이 모든 주(州)가 상원의원을 각 2명 씩 선출하기 때문에 미국 상원은 본질적으로 대의제(代議制)에 어긋나는 기구이다.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단순 다수결이 위험할 수 있다고 보아 상원을 그렇게 비(非)민주적으로 조직해 놓았다. 미국 상원은 필리버스트라고 부르는 의사(議事)방해 행위를 허용하는데, 필리버스터를 종식하고 표결하기 위해선 상원의원 100명 중 60명이 찬성해야 한다. 한 정당이 상원에서 60석을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무슨 안건이건 간에 다수당은 소수당과 협의를 하고 절충을 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절차가 끝나도 정당간에 또 의원간에 의견차이가 있기 때문에 표결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의회의 상임위원회는 청문회를 열어 여론을 청취하고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다. 별다른 토론도 여론 청취도 없이 법률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가 민의(民意)를 수렴하라고 만들어 놓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법은 '정의'에 부합해야 한다

집권자들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법치주의'도 마찬가지다. 만일에 모든 법이 정당하다면 '악법(惡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에도 '악법'은 있는 법이고, 그런 '악법'으로부터 시민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있고 법원이 존재한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도 구성 재판관의 다수결로 이루어지지만, 이들이 내린 판결은 종국적으로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비록 소수 재판관의 의견이라서 판결이 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논리와 철학이 훌륭한 판결이 좋은 판결로 존중된다. 또한 그런 소수의견은 나중에 다수의견으로 채택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다수결이 만능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법률을 집행하면 '합법'이요, 법률을 위반하면 '불법'이라는 논리는 허울좋은 '형식적 법치주의'에 불과하다. 법과 정의(正義)는 동전의 두 면과 같아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법치'는 저항을 초래하고 마는 것은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고도 남는다. 지구상 어느 나라 보다도 우리의 길지 않은 헌정사(憲政史)는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요새 다시 허울좋은 형식적 법치 논리가 성행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법치(法治)'는 또한 절차적 정의를 중요시한다. 원칙과 절차는 안중(眼中)에도 없었던 정치인이 별안간 '법치'를 강조할 경우 설득력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私學法의 교훈

우리나라의 지난 헌정사는 다수결이 남용되고 형식적 법치가 성행할 때에 어떤 부작용이 있나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자유당 시절에 있었던 '보안법 파동'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의 '사학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항상 다수결을 내세운 여당의 단독처리가 문제였다. 숱하게 많았던 헌법 개정의 대부분이 우리 헌법사에 수치스런 오점(汚點)으로 평가되는 것도 다수결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 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사학법 개정은 바로 얼마전의 일이라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다수결로서 사학법 개정을 밀어 붙여서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나라당은 이 법안의 상정을 실력으로 저지하려 했으나 '전투력'이 부족해서 실패했고, 그 덕분에 '웰빙 야당'이니 '초식 공룡'이니 하는 말을 들었다. 한나라당 의원 중엔 몇 백 만원짜리 수입양복을 입은 경우가 있어 몸싸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사학법 개정은 노무현 정부의 이데오르기가 반영된 중요한 입법이었다.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날 청와대는 감격의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학법 개정은 엄청난 역풍(逆風)을 초래했다. 박근혜 대표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추운 겨울에 사학법 무효화를 주장하는 장외(場外)투쟁에 나섰고, 많은 시민들이 그들을 따듯하게 응원했다. 보수단체들은 사학법 개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한달이 멀다고 자주 열었다. 나도 개정된 사학법이 부당하다는 글을 여기저기에 많이 발표했다. 사학법 개정은 보수세력을 응집시켜서 노무현 정권의 쇠락(衰落)을 가져오는 계기를 조성했다. '다수결의 힘'에 마취된 열린우리당이 하수(下手)를 둔 것이다.

그런 사학법 파동이 불과 얼마전의 일인데 한나라당은 그 교훈을 완전히 잊은 것 같다. 사학법 개정에는 '친노(親盧) 직계'라고 불리던 의원들이 앞장섰는데, 이번에 사이버 모욕법, 불법시위 집단소송법, 방송겸업법 등 쟁점법안 통과에는 'MB 직계'라고 불리는 의원들이 앞장섰다. 닮은꼴도 이런 닮은꼴이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어려운 사법시험을 합격한 법률가 출신 의원들이 "국회는 다수결로 움직여야 한다"는 수준의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나라당의 형편이다. 다수결이 그렇게 중요한 원칙이라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장외(場外)투쟁은 왜 했다는 말인가.

민주당의 국회의사당 점거는 물론 잘못된 처사다. 그러나 과연 집권여당이 쟁점법안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 쟁점 법안은 내용의 당(當)·부당(不當)을 떠나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말이다. 입법은 토목공사가 아니며, 국정은 건설업이 아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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