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정치인의 로비는 ‘생계형 범죄’였다

  • 입력 2008년 8월 27일 02시 56분


로비 명목 돈 받아 가사도우미 밀린 월급 주고 사무실 유지비로

사건 무마 위해 돈 빌리고… 그마저 공범에게 떼여

■ 유한열 전 한나라 고문 수사

청와대와 여권의 일부 핵심 인사가 로비 대상자로 거론됐던 유한열(구속) 전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국방부 통합전산망 납품 청탁 의혹 사건은 결국 ‘흘러간 정치인의 생계형 범죄’로 결론이 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김광준)는 유 전 고문이 전산장비업체 D사로부터 받아 챙긴 2억3000만 원의 자금 흐름을 추적한 결과, 가사도우미의 밀린 수개월 치 월급으로 1500만 원, 사무실 유지비에 수천만 원 등 모두 개인 용도로 쓴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유 전 고문이 맹형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에게 건넨 돈은 없는 것으로 보고, 27일 유 전 고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만 적용해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여당 중진인 유 전 고문이 최근에는 가사도우미의 밀린 월급조차 주지 못할 정도로 마땅한 수입이 없었으나,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여직원이 딸린 사무실을 유지해 온 것으로 판단했다.

돈을 돌려받으려고 청와대에 투서를 보낸 D사 대표의 입을 막기 위해 유 전 고문은 받은 돈 2억3000만 원을 되돌려주려 했으나 이 돈마저 없어 처형에게 빌린 것으로 밝혀졌다.

유 전 고문은 청탁 대가로 받은 돈을 모두 써 버린 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이자까지 보탠 2억3500만 원을 “업체에 돌려주라”며 공범인 한나라당 외곽단체 간부 한모(51) 씨의 계좌로 입금했으나 이 돈마저 한 씨에게 떼였다.

검찰은 D사에서 나온 5억5000만 원을 유 전 고문과 나눠 가진 공범 한 씨,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특보로 활동한 김모(66) 씨, 모 단체의 상임부총재인 이모(59) 씨 등에게 건너간 돈 또한 부채 변제 등 개인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까지 로비 자금을 건네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던 공 최고위원에 대해선 유 전 고문의 민원을 홀대할 수 없었던 처지였던 것으로 검찰은 결론지었다.

대학 선배인 유 전 고문에게서 청탁을 받은 시점은 마침 한나라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 경쟁이 치열하던 3월 초였다. 공 최고위원 측은 당에서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해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국방부 쪽에 문의해 준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밝혔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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