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여당에 ‘물의 장래’ 맡길 수 있나

  • 입력 2008년 8월 27일 02시 46분


한나라당이 상수도사업 민간위탁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한 과정을 보면 집권 여당의 무게나 깊이는 느껴지지 않고 어쩌면 저렇게도 가볍고 얇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 의장은 24일 “당정은 최근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상수도사업의 민간 위탁을 핵심으로 하는 ‘상하수도 서비스 개선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률안’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해 9월 중 입법예고하고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 대변인은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설명했다. 그러나 당 최고위원회는 하루 만인 25일 상수도사업 민간위탁 방안의 전면 포기를 선언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국민이 수돗물 민영화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이유다.

어제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안홍준 제5정책조정위원장이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홍준표 원내대표와 신경전까지 벌였다. 여당 내에서조차 합리적 토론과 설득이 안 되는 판이니 설령 민간위탁 방안이 확정됐더라도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을 설득하지 못해 우왕좌왕했을 것 같다.

당 정책위가 어떤 안(案)을 내놔도 최고위원회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정책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사전에 조율을 해야 한다. 이렇게 뒤집힐 것을 발표부터 했으니 당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수도사업은 효율성이 낮아 정부가 매년 5000억여 원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다. 수돗물 값도 지자체마다 달라 사업의 광역화(廣域化)와 민간 참여를 통한 전문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더욱이 시장규모 400조∼900조 원으로 추산되는 세계의 물 산업은 미래 성장산업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서라도 경험과 실적을 쌓게 해줘야 한다.

상수도사업 민간위탁은 관(官)과 민(民)의 역할 분담으로 서비스 향상이 기대되는 등 추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집권당이 시민단체의 반대를 두려워할 만큼 소신도 없고 설득능력도 없어서 장기적 국익 실현에 필요한 개혁을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결국 남은 4년 반도 자리나 지키면서 안일(安逸)을 즐기겠다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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